월요일 밤 11시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지요. 1시간 동안 뺑코를 살피노라면 최소한 다섯 번 이상은 미소짓게 됩니다. 그만큼 탁월한 진행 솜씨와 깔끔한 구성이 돋보이기 때문이지요. 가히 '월요일밤의 피로회복제'라고 자부할만 합니다. 토크쇼의 지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이번 주와 지난 주 방송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번 주(7월 17일 방송)에는 베이비복스, 샤크라, 채정안, 공효진, 김민선 등 늘씬한 미녀 가수와 연기자들을 모아놓고 소위 '섬머 리서치 토크'란 걸 하셨지요. 헌데 그 리서치의 내용이란 것이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수영복이 벗겨진 적이 있느냐?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으로 나서면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냐? 유방확대수술을 받으려고 한 적이 있느냐? 처음 만난 이성과 키스를 나눈 적이 있느냐? 누드촌에 가면 옷을 벗을 자신이 있느냐? 질문을 받은 가수와 연기자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경험담을 털어놓더군요. 발언 내용이 위험하다 싶을 때마다 선생님은 탁월한 순발력으로 웃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예고된 것처럼 '쇼킹'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슬퍼지더군요. 리서치를 따라가다보니, 고운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한 여가수와 여배우들의 알몸이 떠올랐던 겁니다. 이것은 저의 지나친 과대망상일까요 아니면 선생님의 노회한 전략입니까?
지난 주(7월 10일)에 저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삭발토크 제로세팅이었습니다. 이번 주 유부토크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그 우울함이 증폭되었지요. 유부클럽 2기 맴버의 막내인 남궁연씨가 표인봉, 권용운, 변집섭씨의 삭발사진을 컴퓨터합성으로 만들어왔지요. 그들은 서로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저 역시 머리로 풍경을 만들던 표인봉씨의 지나치게 단정한 얼굴과 노지심을 닮은 권용운씨의 표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강인한 의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의 감동적인 사연! 삭발을 하고자 하는 일반인 출연자를 스튜디오에 초대하여 그가 삭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어보고 삭발식을 단행하는' 삭발토크 제로세팅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코너를 '새롭게 출발하는 젊은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다주고자' 만드셨다고 하셨지요. 처음 삭발을 한 무명가수의 경우는 기획 의도에 부합된 측면이 많았습니다. 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머리를 깎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짐작을 하셨겠지만, 지난 주에 출연한 대학생의 경우는 감동 대신 실소(失笑)를 자아냈습니다. 살을 빼기 위해 삭발을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참여신청도 들어올 수 있겠지요. 허나 살을 빼기 위해 머리를 깎는 모습에서 과연 시청자들이 어떤 감동을 받을까요? 머리를 깎는 대학생의 표정이 진지해질수록 그를 둘러싼 풍광은 점점 더 코미디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찬조출연한 친구들의 응원이나 여자친구의 편지 또한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살을 빼기 위해 머리를 깎는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마치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과 이별하는 아내의 그것처럼 애절하더군요. 웃기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면 마음껏 웃으면 그만이지만, 감동을 전하려고 만든 코너가 쓰디쓴 웃음밖에 줄 수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궁연씨의 삭발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지만, 표인봉이나 권용운, 변진섭씨의 합성사진은 한낱 해프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해프닝을 즐기다가, 살을 빼기 위해 머리를 깎은 그 학생의 참으로 결의에 찬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지요. 저는 감히 이것 또한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해프닝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삭발토크 제로세팅이란 코너를 만든 선생님의 마음을 이렇게 추측합니다. 연예인을 앞세워 웃음만 선사하는 프로그램보다는 무엇인가 진솔하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꿈꾸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삭발토크 제로세팅에 적합한, 삶의 미로에서 헤메다가 벼랑 끝까지 내몰린 이 땅의 젊은이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다음 주가 기다려집니다. 다음 주에도 여가수나 여배우들의 알몸을 상상하게 될까요? 삭발토크 제로세팅을 보며 우울하게 웃게 될까요? 이런 문제점들을 선생님도 벌써 파악하셨겠지만, 노파심으로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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