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영화제 폐막식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얘기다. 감독상 수상자인 시노다 마사히로 불참, 남우주연상 파스칼 그레고리 불참, 관객상 <투발루>는 배급사 대표가 대리 수상.
20일 오후 시민회관에서 열린 부천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는 이름만 시상식인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초청 명단에 오른 20여명의 인사 중 5명 정도만이 행사장에 왔을 뿐이다. 초청자 가운데 특히 김기덕 감독이 불참한 것은 의외였다. 프로그래머인 정초신씨는 이번 부천영화제가 김기덕식의 정서로 치러진다고 얘기했었다. 정초신씨는 故 최무룡씨를 대신해 공로상을 받았다.
관객들은 그의 아들 최민수씨를 기대했을 것이다. 폐막식을 가득 채운 관객들도 사실은 식후 행사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폐막작으로 공포영화 <가위>가 상영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폐막 행사가 이렇게 무성의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적어도 국제영화제라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기대와는 달리 이번 부천영화제는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다. 행사운영 면에서도 그랬고 프로그램 구성면에서는 더욱 그랬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못했다. 영화제측은 영화관객 5만 여명을 포함해 20여 만명이 부천을 찾았다지만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일단 어느 정도라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 잠정 집계일 뿐이다.
영화제가 짜임새 있게 운영됐다면 관객 수치에 대한 데이터는 매우 다양하게 집계가 됐어야 옳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무국의 집계는 전체 들어 온 입장권 판매액수를 일정 금액으로 나누는 방법에 의해 관객수를 계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짜표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허수가 많다는 것이다.
부천영화제의, 이른바 '캐파(capacity)'는 총 5만2천 여석이다. 사무국측 주장대로 5만 여명의 유료관객이었다면 상영관중의 하나인 소사구청이 영화제 9일 동안 꽉꽉 들어찼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 상영관은 종종 영화제 관객보다 자원봉사자 수가 더 많았다.
영화제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스타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자리라면 이번 부천은 그 점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왜 스타들은 부천에 가지 않는가. 그것은 부천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천은 서울에서 2시간 거리다. 시간상으로는 매우 짧은 거리지만 어쨌든 영화제 현장을 다녀 오면 하루 일정을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부산처럼 아예 간김에 며칠 있다 오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힘들다. 조금 고생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지만 또 아주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곳. 가깝지만 먼 거리가 바로 부천이다. 심사위원 중 한명인 배우 박중훈씨조차 19일 있었던 심사위원단 공식 기자회견에 새 작품 <불후의 명작> 촬영을 이유로 불참했을 정도다. 심사위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에 대한 강한 구속력을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천영화제 페스티벌 레이디라는 배두나씨 역시 영화제 기간 중 어떤 공식행사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취재 안테나에 잘 잡히지 않았다. 취재기자들이 모르는 비공식 행사가 그렇게 많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제 홍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고 영화제 관객들 틈에서 있어야 했다. 그녀는 9일 동안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어쨌든 스타들 모셔오기란 측면에서 부산영화제보다 더욱 어려운 곳이 바로 부천이다. 하지만 스타들이 없는 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스타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빈곤의 악순환이다.
시청 상영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한 여성은 행사 기간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명예훼손 문제로 경찰에 고발하는 절차를 묻고 다녔다. 상영관 입장 문제를 두고 한 지역신문 기자와 시비를 벌인 끝에 큰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싸움의 발단이 지역신문 기자의 잘못된 인성에서 비롯된 일인 것이 분명해 보이고 또 그런 일을 당한 자원봉사 여성의 입장은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자원봉사자와 프레스, 일반관객들 사이에서 일단 이렇게 세싸움이 형성되면 영화제는 모로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무국 직원들도 9일 내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사무국은 홍보담당과 초청담당, 인터뷰 담당, 통역 담당 등으로 세분화 돼있기는 했지만 이들 사이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영화제가 가장 금기시해야 할, '관료주의적' 병폐가 부천처럼 비주류를 지향하는 영화제 곳곳에서 드러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통역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뛰어 넘어 영화제의 존폐 문제까지 연결되는 것이었다. 통역 문제는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명백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긴 했지만 올해로 네 번째인 부천영화제가 똑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건 충분히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브라이언 오하라와의 인터뷰에서 한 기자는 '시체애호증'란 뜻을 통역자에게 설명하느라 바빠 정작 오하라 감독과는 내밀한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영화제가 지난 1,2,3회를 거치면서 구축했을 법한 인프라, 곧 행사 운영의 노하우가 완전히 단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무국 직원도 모두 새 얼굴, 자원봉사자도 새 얼굴, 조직위원장에서부터 집행위원장 등 간부급들마저 모두 다 새 얼굴인 실정에서 지난 회의 경험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건 4회가 아니라 첫 회인 셈이다. 당연히 행사가 갈팡질팡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조직 운영이 시스템화되지 못할 때 거기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불편한 점을 관객들이 고스란히 안게 된다는 점에 있다. 빈번한 상영사고와 작품 교체, 상영시간의 지연 등등 4회 행사치고는 사소한 사고, 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결코 사소하게 다뤄져서는 안될 사고들이 너무 많았다는 지적이다.
부천영화제는 올해 상영작품 수를 대폭 늘렸다. 장편만 약 30편 가까이 늘어난 백40여 편의 영화들이 초청돼 상영됐다. 하지만 양적 성장이 영화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하향평준화했다는 지적이 더 많았다. 단편영화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던 김지운 감독은 "판타스틱 영화제치고 작품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좀 떨어지는 작품들도 꽤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체스영화제 예를 들며, "차라리 아주 소규모로 대신 특색있게 행사가 치러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부천영화제를 한 2-3일 '서핑'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볼만한 작품들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포장은 그럴 듯 해 보이는데 막상 까보면 맹숭맹숭한 것이 이번 부천 작품"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작품 수를 늘리고 영화제의 외형을 키우는데 애를 쓴 것치고는 결과가 지나치게 빈약했다. 특히 올해 행사는 "자유 저항 반란"이라는 도발적인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영화제 주제가 올바르게 구현됐다고 평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부천은 또 저항과 반란의 이미지를 위해 '제한구역'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제한구역' 가운데
부천국제영화제는 올해 행사로 기로에 서게 됐다. 안정기에 들어서야 할 시점에 오히려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안게 됐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이 행사가 국내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지속적인 발전과정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장호 감독만큼은 그런 논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이감독의 평소 입버릇 가운데 하나가 "영화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국제영화제가 한 서른 개쯤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왕이면 시스템도 잘 갖추고 프로그램도 잘 짜여진 영화제이기를 바란다. 그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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