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라이브 바커 감독 '악령의 상자(원제:헬 레이저)’
공포영화 역사상 가장 고딕적이며 인문학적 성찰이 살아 있는 공포영화의 가작. 바커 감독은 유명한 미국의 공포영화 작가 스티븐 킹의 대를 잇는 감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헬 레이저’는 온 얼굴에 핀이 꽂혀 있는 지옥에서 온 수도사 핀헤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포영화의 아이콘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이없게도 이 걸작 공포영화가 무슨 싸구려 할리우드 저질 호러 취급을 받으며 변두리 영화관을 전전했던 기억이 난다.
저주의 상자에 얽힌 비밀을 풀어버린 건달 프랭크는 저승사자 핀헤드에게 죽임을 당한다. 프랭크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 형수 주리아는 프랭크의 집으로 이사온 첫날,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그를 발견한다. 그러나 끔찍하게도 뼈만 남은 상태인 프랭크를 위해 주리아는 사람들을 하나씩 유혹해 살해한다. 사람들의 피를 받을수록 점차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프랭크. 이렇듯 이 영화의 주제는 금기와 욕망이다.
주리아는 프랭크를 통해 얻는 육체적 쾌락 때문에 그의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주게 된다. 찢어진 손에서 흘러나온 형의 피가 처음으로 프랭크 시체 소생의 기원이 된다는 설정은, 바로 ‘근친상간적’ 금기를 어겼을 때 인간이 받는 징벌과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욕망을 대위법적인 함수로 그리고 있다. 호러 사상 가장 ‘멋진’ 괴물로 통하는 지옥전사 핀헤드의 모습이 충격적이면서도 공포의 근원을 인간 심리의 근저에 깔린 추악한 욕망, 부패하기 쉬운 육신에의 공포에서 찾는다는 측면에서 거의 ‘철학적 깊이’를 갖춘 공포영화다.
2) 피터 잭슨 감독 ‘데드 얼라이브’
피터 잭슨은 뉴질랜드 출신의 악동 감독. 87년 초 발표한 저예산영화 ‘고무인간의 최후’ 이후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데드 얼라이브’는 좀비영화의 기본 틀에 ‘인디아나 존스’부터 ‘사이코’ ‘오멘’ 등을 무차별로 패러디한 짬뽕잡탕 영화. 본격적인 스플래터 무비이기도 하다. ‘데드 얼라이브’는 너무나 재기발랄해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할리우드로 넘어가 ‘프라이트너’를 만든 감독인가 싶을 정도다(그의 차기작은 판타지 문학의 거봉 레오나드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 전쟁’이다).
‘데드 얼라이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피터 잭슨의 영화는 가볍게 놀고 쉽게 튄다.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질투심 많은 어머니가 아들의 데이트를 미행하다 좀비 원숭이에게 물려 역시 좀비가 된다는 내용. 이후 남자 주인공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하나 좀비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은 끝이 없을 듯한 좀비 행렬을 잔디깎이 기계로 일거에 갈아버리는 무차별 살상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와중에도 ‘사이코’에 대한 익숙한 패러디와 질척한 피에 자꾸 넘어지는 주인공의 슬랩스틱한 경쾌함은 이후 조 단테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스몰 솔저’에서 재인용됐다.
3) 존 맥노튼 감독 ‘헨리:연쇄 살인자의 초상’
일단의 슬래시 무비에 익숙한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 아연실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표정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 킬러 헨리는 영화역사상 가장 무뚝뚝하고 쿨한 살인미학의 전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런 윤리나 도덕 없이, 게다가 감정조차 없이 저지르는 헨리의 살인은 그와 동행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오티스의 흥분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한 비인간성과 감정없음이 관객을 더욱 소름끼치게 하는 것. 특히 TV를 사러 갔다 가게주인이 퉁명스럽게 굴자 그의 얼굴에 TV를 던져 넣어 살해하는 장면은 그 독특한 시각적 미장센과 더불어 매스미디어의 볼모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육체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보이기도 한다.
헨리는 오티스의 여동생과 연애를 하다 여동생을 강간하려는 오티스를 살해하고는 여자와 함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영화의 마지막은 오티스의 여동생마저 토막 살해한 뒤 제 갈 길로 가는 헨리의 단출한 모습을 비춘다.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객관적인 살인기계 헨리의 마지막은 이렇듯 충격적이다.
4) 웨스 크레이븐 감독 ‘스크림’
90년대 들어 한동안 이제 슬래시 무비는 없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스크림’은 봐란듯이 미국에서만 자그마치 1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스크림’은 10대 영화를 부활시켰을 뿐 아니라 호러영화를 다시 관심의 초점에 들어서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웨스 크레이븐은 철학박사 출신의 지적인 호러 전문 감독으로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탄생시킨 사람.
‘스크림’은 무엇보다 영화광을 위한 영화다. 전화를 통한 영화 퀴즈게임 끝에 드루 베리모어가 살해되는 첫 장면은 그 스릴과 쾌감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드루 베리모어가 할로윈 이야기를 하면서 부엌칼을 쓰윽 꺼내는 장면에서, ‘할로윈’이라는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살인마가 부엌칼로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을 아는 영화광이라면 단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웃음이 나올 것이다. 게다가 주연급 여배우 드루 베리모어가 초장부터 살해되는 ‘파격’에 관객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다. ‘스크림’은 바로 기존 공포영화의 장르를 비틀어 다시 새로운 공포영화의 법칙을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마약과 섹스를 하는 10대는 살해된다’든가 ‘곧 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10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든가 하는 규칙들을 스크림은 여지없이 깨뜨리며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였다. 재미있게도 우리의 10대 영화 역시 ‘여고괴담’에서 부흥을 시작했다. ‘스크림’의 성공은 공포영화가 10대에게 미치는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해 준 작품이다.
5) 아벨 페라라 감독 ‘바디 에어리언’
돈 시겔 감독의 걸작 호러영화 ‘신체 강탈자의 침입’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마티라는 소녀는 아버지를 따라 어느 지방 소읍의 학교로 전학한다. 마티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데, 사실 그 지방 사람들은 모두 외계인이었던 것. 잠들 때 몰래 다가가 육신을 파괴하는 이 에일리언은 사실 냉전시대를 휩쓸던 전체주의를 풍자한 것. 아이들이 모두 졸린 눈으로 한결같이 붉은 색의 이 형체 없는 에일리언 그림만 그리는 획일주의는 지금 보아도 모골이 송연한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아벨 페라라는 만들 때마다 화제작이 되는 미국 최후의 컬트 감독.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패컬티’에서 그대로 패러디되고 있다.
이외에도 좀더 성의 있는 영화팬들이라면,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이나 토비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좀비오’ ,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등을 권한다. 비디오로 출시되면서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한국 제목을 얻었지만, 모두들 호러영화의 명편이자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다만 뒤의 다섯 편은 좀 큰 비디오가게까지 가는 성의를 보여야 할 듯.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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