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프로가 프로답게 대접받는 방송

  • 입력 2000년 8월 3일 13시 26분


지난 달 31일 여의도 KBS 별관의 한 스튜디오에서 개그맨 백재현을 만났다. 라이브 공연 형식의 개그로 인기 높은 2TV <개그콘서트>에서 맹활약 중인 그는 얼마 전 같은 채널에서 방송하는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촬영을 위해 실제 프로레슬링 경기에 출연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경기의 결과가 궁금했다.

"당연히 졌죠. 어떻게 이겨요." 이때 옆에 있던 제작진이 한 마디 거들었다. "거의 죽다 살아났데요. 하마터면 좋은 개그맨 한 명 잡을뻔 했죠." 녹화 전 스튜디오에서 가볍게 웃으며 농담조로 오간 이야기였지만 아직도 몸구석구석이 결린다는 그의 모습이 눈에 안쓰러워 보였던 것은 왜일까?

180cm, 110kg의 당당한 체구를 가진 백재현이 프로 레슬러로 변신하는 과정은 두 달이 넘게 <슈퍼TV, …>에서 방송됐다. 야외 훈련장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훈련하는 모습, 익숙치 않은 훈련과정에서 쩔쩔매는 장면 등이 방송에 가감없이 소개됐다. 이를 보며 시청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방송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프로는 틀려."

스타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에 도전한다는 이른바 '스타 체험'류의 코너는 현재 <슈퍼TV,…>를 포함,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부분 방송하고 있다. 도전하는 장르도 다양하다. MBC에서는 신인 개그맨이 맨몸으로 국토종단을 하고 있고, SBS에서는 연극배우, 탤런트, 아나운서들이 대한해협을 수영으로 건너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다.

한 힙합그룹은 차력을 배운다고 요즘 매주 그냥 보기에도 위험천만한 훈련을 하고 탤런트 윤다훈은 기훈련에 한창이다. 이 밖에도 그동안 방송된 내용을 보면 다이어트, 보디빌딩 등 도전 종목도 다채롭다.

예전에 모 CF에 등장했던 카피 중에 "프로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프로가 아름다운 순간은 자기의 전문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땀을 흘릴 때이다. 연예인들 역시 프로이다. 이 말은 그들이 자신의 전문분야, 즉 가수는 노래와 춤에서, 탤런트는 연기에서, 코미디언은 웃음을 주는 재주에서 남보다 탁월한 능력과 열정, 집념을 보여줄 때 매력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되짚어보자. 숱한 스타들의 도전 시리즈에서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련된 것이 무엇이 있나? 도대체 가수가 차력을 배우고, 이제 겨우 초보자 수준을 겨우 벗어난 수영실력을 가진 연기자가 왜 무리하게 대한해협 횡단을 도전해야 하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방송에서는 이상한 흐름이 생겼다. 분명히 소개는 가수라고, 연기자라고 했는데 정작 노래하거나 연기하는 모습보다는 오락프로그램에서 쓸데없는 농담을 하거나 각종 '스타체험'에 앞장서는 모습이 더 많은 그런 연예인들이 있다.

방송에서 노래할 때는 테이프 틀어놓고 립싱크로 붕어처럼 입만 벙긋대다가, 오락 프로그램에만 나오면 시청자가 민망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는 그런 연예인들이 더 대접을 받는 것이다. 나는 가수니까 노래만 하겠다고, 연기자니까 연기만 하겠다고 하면 영락없이 '건방지다' '많이 컸다'는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프로는 프로답게 활동할 때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 이제는 방송에서 프로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더 이상 어설픈 연예인들의 '묘기대행진'은 보고 싶지 않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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