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상외로 인기만화가 원작인 영화가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스폰’(1997년)처럼, 영화가 신통치 않을 때 원작만화의 인기는 되레 흥행의 걸림돌이다. 만화와 영화가 모두 성공한 경우는 ‘슈퍼맨’ ‘배트맨’ 정도가 아닐까. 12일 국내 개봉될 ‘엑스맨’도 지난달 미국에서 개봉 첫주말에 5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만화, 영화 동반 성공’대열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이 성공한 ‘∼맨’류 영화들의 공통점은 동시대의 감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
▼'슈퍼 아메리카' 자신감 반영▼
△슈퍼맨과 80년대〓1978∼1987년에 영화 네편이 제작됐다. 슈퍼맨은 멸망해가던 행성에서 태어난 외계인. 지구로 보내진 뒤 양부모 밑에서 자라며 자신의 초능력을 깨닫지만 정체를 숨기고 위기시에 슈퍼맨으로 변해 지구를 구한다. 슈퍼맨은 늘 고뇌없이 확신에 차 있으며 자신을 악에 맞서는 선의 수호자와 동일시한다. 이같은 모습은 8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던 ‘팍스 아메리카나’와 미국인들의 강해지려는 욕망, 자기 확신을 반영한다.
▼영웅주의 퇴색…우울한 사회상 그려▼
△배트맨과 90년대〓1989∼1995년에 역시 영화 네편이 제작됐다. 배트맨이 처음 영화화된 89년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도하던 레이건 정권 퇴진과 함께 ‘슈퍼맨’류의 영웅주의 영화들의 기세가 한 풀 꺾인 때였다. 이 때 만들어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은 전형적 영웅담인 만화와 달리 선, 악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다. 배트맨은 정의감에 불탄 영웅이 아니라 고독하고 이중적이며 어둠에 물든 듯한 이미지이고, 악당들도 사회로부터 받은 제 나름의 상처가 있다. 내상이 깊고 자기분열적인 등장인물들과 한없이 높은 빌딩 사이의 어둑한 공간에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고담 시는 우울한 현대사회의 한 풍경과도 같았다.
▼현실의 좌절…모험 통해 극복▼
△엑스맨과 2000년〓올해 영화화된 ‘엑스맨’은 요즘 젊은 관객들이 배트맨의 친구 로빈같은 영웅의 주변 인물보다 직접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 챈 듯, 아무나 마음에 드는 영웅을 골라 동일시할 수 있을만큼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초능력을 지닌 자비에 박사가 돌연변이 인간인 엑스맨들을 모아 훈련시키는 자비에 학교는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마법사 학교 호그와트와 비슷하다. 엑스맨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괴상한 능력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 현실에선 좌절하지만, 자비에 학교 동료들과의 모험을 통해 현실의 좌절을 극복한다는 설정도 ‘해리 포터’를 쏙 빼닮았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유전자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결과 초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생겨난다는 아이디어에 기초한 ‘엑스맨’이 인간 유전자 지도를 밝혀낸 게놈 프로젝트가 첫 결실을 거둔 요즘 선보이게 된 것도 영화와 시대의 기막힌 궁합이다.
▼'거미인간'의 캐릭터는?▼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후속타자로 스크린에 찾아올 만화 영웅은 ‘스파이더맨’.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을 맡고, 토비 맥과이어나 웨스 벤틀리가 주연으로 거론중이다. 만화속 스파이더맨은 슈퍼맨처럼 강하지도, 배트맨처럼 음침하지도 않으며 엑스맨처럼 현실에서 좌절한 ‘왕따’출신도 아니었다. 스크린으로 뛰어든 이전의 만화 영웅들이 그러했듯, 스파이더맨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적 영웅이냐에 따라 수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가 함께 호흡할 시대의 공기는 어떤 것일까?….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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