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공중파 3개 방송사의 주말 쇼프로 사회를 독점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토요일 저녁식사를 하면서 KBS 2TV의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을 힐끔거리고, 일요일 늦잠에서 깨어나 SBS의 '좋은 친구들'을 시청한 다음, 잠깐 백화점 구경을 나갔다가 돌아와서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보았지요. 그때마다 영훈님은 방긋방긋 웃으며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영훈님의 '마마보이' 전략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지요. 처음부터 영훈님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인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더욱더 강하고 남성다운 모습으로 성공한 드림팀의 '무술인' 이상인과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이지요.
저는 영훈님을 치마폭에 쌓인 무능한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영훈님은 미스타 투의 '하얀겨울', 터보의 '트위스트킹', 엄정화의 '포이즌'과 '배반의 장미'를 만든 뛰어난 작곡가이면서, 벌써 음반을 두 장이나 낸 가수가 아닙니까?
그런데 '노을의 연가'에 뒤이어 발표한 '맨'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실망했습니다. 가요계에 갓 입문한 햇병아리 가수라면 뮤직비디오를 만든 감독을 비판했겠지요. 그러나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영훈님이라면 뮤직비디오에 관한 책임도 영훈님께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리메이크한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영애가 야쿠자의 소굴에서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 나오지요. 저는 아직까지도 인간에 대한 본원적 물음을 던지는 이 노래가 왜 야쿠자 이야기로 변질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헌데 영훈님의 '맨'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나오더군요. 이번에는 안문숙이 야쿠자의 소굴에서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이영애가 손가락을 자를 땐 기분이 나빴는데 안문숙이 또 자르니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이것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표절일까요? 저는 명백한 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정도의 표절은 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시겠지요?
왜 그 장면을 표절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또 비장미를 자아내지도 못하지요. 일본적인 것에 대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함일까요? 영훈님은 그 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조성모의 '가시나무' 뮤직비디오를 이미 보셨을 텐데 마음에 찔리지는 않으셨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저는 영훈님이 진정한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바랍니다. 밤을 새워 만든 곡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라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겠지요. 사진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방송에도 출연해야지요. 저는 그 과정에서 영훈님이 소외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훈님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노래와 뮤직비디오라면 귀찮더라도 영훈님께서 직접 일일이 챙겨야겠지요.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보아도 멋있는 신승훈이나 김건모의 뮤직비디오들처럼, 영훈님의 뮤직비디오들도 그렇게 준비되고 창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3집 준비를 하고 계시겠죠? 이번에는 또 어떤 노래들로 영훈님의 감성을 펼쳐보일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맡고 계신 세 개의 쇼프로그램 중에서 하나 쯤은 접는 것이 어떻겠는지요? 시냇물에 발을 담글 작은 여유라도 있어야 뮤즈들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맨'을 흥얼거리며 이만 줄입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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