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현대미술의 메카 "이제는 런던이다"

  • 입력 2000년 8월 16일 19시 29분


영국 런던의 새 미술관 테이트 모던의 개관으로 유럽 전체가 들떠 있다. 내가 테이트 모던을 방문한 것은 5월 12일 개관일로부터 석달이 지난 최근이었다. 관객이 많아 전시장내 식당에 들어가는데도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89년 골드스미스 미술학교 학생에 불과했던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프리즈(Freeze)’전이 기점이 되어 영국의 현대미술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후 데미안 허스트는 소를 토막내고 상어를 특수처리한 충격적인 작품을 선보였고, 특히 영국의 유명한 콜레터 찰스 사치가 허스트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여 영국의 현대 미술 작가들이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영국 젊은 작가들의 ‘센세이션’전은 지난해 10월 뉴욕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 마리아’는 성모마리아 둘레에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낸 성기사진을 갖다 붙이고 코끼리 똥을 발랐다. 가톨릭계가 들고 일어나고,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전시회를 연 브룩클린 미술관에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나섰다.

허스트나 오필리 등은 이같은 ‘사건’을 통해 과거 미국의 잭슨 폴록이나 앤디 워홀이 누린 지위를 얻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테이트 모던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여겨지고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위상에 도전하고 있다.

런던 사우스워크 뱅크사이드에 있는 테이트 모던은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세인트폴 성당을 마주보고 있다. 미술관으로 개조된 건물은 템스강변에 굴뚝이 솟아 있는 옛 발전소. 81년 폐기할 계획이었으나 건축가 길스 길버트 스코트 경의 대표적 설계작품으로 인정돼 보존키로 결정된 건물이다. 스코트 경은 워털루 다리와 붉은 공중전화부스의 설계자다.

◀ 런던을 뉴욕에 못지 않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부각시키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테이트모던 갤러리
▶ 모네의 '수련'과 리처드롱의 '잉글랜드'가 한 전시실에 나란히 전시돼 있는 것이 테이트 모던의 독특한 전시방식이다.

94년 테이트 모던 국제설계공모전 결과 스위스 바젤 출신의 헤르조그와 므롱이 당선됐다. 이들은 칙칙하고 무거운 느낌의 발전소 건물위에 두 개의 층으로 된 밝은 형광 유리구조물을 얹었다. 밤에는 강변에 비친 불빛과 유리건물 안에서 나오는 빛이 어우러져 옛 건물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기존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이름을 바꿨다. 테이트 브리튼은 16세기 이후의 영국미술을, 테이트 모던은 20세기 이후 전세계의 현대미술을 주로 취급하는 것으로 역할분담했다.

테이트 모던에 들어서면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9m 높이의 왕거미같이 생긴 거대한 철제 조각 ‘마망’이다. 프랑스 태생의 뉴욕작가로 이제 할머니가 된 루이즈 부르조아의 작품은 사진으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주위를 압도한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관심은 당연히 전시방식이었다. 기존 미술관들이 대개 시대순이나 미술사조별로 전시하는데 반해 테이트 모던은 주제별 분류방식을 택했다. 20세기 전체를 포괄할 만한 주제를 17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확립된 4가지 카테고리, 즉 풍경화 정물화 누드화 역사화로 나누고 전통적인 4가지 카테고리가 어떻게 맥을 이어왔는지, 현대를 통해 어떤 변형이 이뤄졌는지를 보여줬다.

풍경화 전시장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과 영국 작가 리처드 롱의 ‘잉글랜드’가 한 방에서 대화하도록 한 것은 이런 방식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후기 인상파의 대가 중 한 사람인 모네와 아직 살아있는 영국 작가를 한 자리에 놓아 영국미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리처드 롱을 주요작가로 부각시킨다. 두 작품을 따로따로 볼 때와는 감동이 또 달랐다. 또 누드화 전시장에 전시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과 바넷 뉴먼의 그림도 정신성의 추구란 측면에서 동질성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역사화 전시장에서 파브로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전시하면서 당시 스페인 내전의 기록문서나 페르낭 레제의 기록영화, 같은 주제를 다룬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도 기존에 보았던 방식과 다른 시도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테이트 모던의 시니어 큐레이터인 프란세스 모리스는 “앞으로는 어떤 작가가 유명하다고 해서 바로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소장품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지를 판단해 작품을 구입하겠다”며 새로운 콜렉션의 방향을 제시했다. 작품의 명성보다는 작품들간에 어떤 미술사적 연관성을 찾아내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영국의 미술은 미국 할리우드처럼 대중을 흡수하는 단계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허스트 같은 작가들은 유명연예인과 함께 대중적인 스타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뤄진다. 미술학교에서는 작가로 살아남는 법, 화랑을 선택하는 법, 미디어를 이용하는 법 등 스스로를 프로모션할 수 있는 아트 매니지먼트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콜렉터가 집접 대학의 졸업전을 찾아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영국작가들이 쏟아내는 작품중 30%만이 영국내에서 소화되고 나머지 70%가 모두 해외로 팔려나가는 것도 부러운 현실이다.

‘터너상(賞)’은 젊은 작가들이 유명세를 얻는 좋은 기회다. 화이트 큐브나 리슨 갤러리 같은 일급화랑들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잘 포장해 소개한다. 한국의 문예진흥원 같은 공적 후원기관인 브리티시 카운슬은 해외에 영국 작가의 전시를 알리는데 적극적이다. 이를 배경으로 테이트모던이 문을 열었다.

김선정(아트선재센터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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