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진네만 감독, 1960년)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역사의 인물은 많다. 그러나 그 중에 법률가는 드물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법률가가 있다면 반드시 후세의 구원을 받는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법률가의 수호 성인이다. 그는 단순한 법률가가 아니라 '통합학문'의 대가였다. 정치학, 외교학, 철학, 문학, 신학 등 그의 이름이 영구히 각인된 학문의 영역은 무수하다.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는 법률가이자 성인인 모어의 일생을 초상화처럼 압축한 수작이다. 또한 이 작품은 '피의 혁명을 막은 방패'라는 자랑스런 영국법의 진수를 배우기에 더없이 좋은 영상교재다.
영화의 제목은 모어의 지적(知的) 교우였던 네델란드의 철학자 에라스무스가 붙여준 별칭을 옮긴 것이다. 감옥의 창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조망하는 모어의 뒷모습에는 원칙과 소신의 당당함이 풍긴다.
영악스러울 정도로 기지가 뛰어난 법률가, 그러면서도 원칙에 기꺼이 목숨을 거는 정의의 사도, 자녀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이상적인 가장인 그는 속인과 성인의 결합체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테임즈강을 황급히 노를 젓는 전령이 모어의 저택에 도착한다. 이 전령은 밀납(蜜蠟)으로 봉인(封印)된 한장의 서한을 가지고 온다.
국민의 존경을 받던 울지(Woolsey)경에 이어 모어는 나라의 최고의 관직인 로드 챈슬러(Lord Chancellor)에 등용된 것이다. 국왕 헨리 8세는 모어의 도움을 청한다.
남계(男系) 왕통의 승계가 지상의 과제였던 헨리는 아이를 못 낳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젊은 앤을 왕비로 맞아들일 결심이다. 교황이 이혼을 허가하지 않자 헨리는 비상조치를 강구한다. 법률가를 동원하여 자신의 이혼이 적법함을 인정하는 법리를 개발하고, 여의치 않으면 속권(俗權)과 교권(敎權)이 분리되는 새로운 법제를 창설할 생각이다.
그러나 모어는 교황과 교회 주권의 신봉자였다. 국왕과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강구하지만 마지막에는 정면으로 충돌하고 사임하게 된다.
헨리는 국왕이 교회의 수장을 겸하는 법을 선포한다. 충실한 행정장관 크롬웰이 모든 신민(臣民)의 준법 선서를 요구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선서를 거부한 모어는 런던 타워에 수감되었으나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마침내 반역죄로 기소되어 사악한 리처드의 위증과 자유롭지 못한 배심의 유죄평결을 받고 참수된다.
이 영화의 부수적 효과는 영국 사상 가장 유능한 법률가로 평가받는 모어의 입을 통해 근대 영국법의 맹아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위험한 인물을 체포하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악마에게도 무죄의 추정과 법의 보호를 부여해야 한다는 단호한 설법, 그리고 단순한 침묵을 근거로 유죄의 추정을 할 수 없다는 최후변론 등은 역사에 길이 남을 법률가의 명언이다.
그로부터 500년, 인류의 법은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지 의문이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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