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9년여 동안 '감독'이란 칭호를 달고 살았던 그는 작품의 편수를 늘리는 데 게을렀다. <그대 안의 블루>(92)<네온 속으로 노을지다>(95) 이후 5년만에 신작 <시월애>를 완성한 이현승 감독. 그와 시사회 직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월애>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감>과 비슷하다. <동감>이 먼저 개봉됐기 때문에 부담스럽진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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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동감>과 <시월애>는 소재만 비슷할 뿐 구조는 많이 다르다. <동감>이 두 주인공에게 현실의 연인을 붙여줌으로써 4각 관계의 미묘한 심리 드라마를 강조했다면, <시월애>는 전체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표현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원래 멜로 영화라는 게 주연배우들의 시선 교환을 가장 중요한 시추에이션으로 활용하는 장르인데, 그걸 배제해야 하니까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난 장갑, 물고기 등의 소품을 이용해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C.G.를 사용한 장면도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장면이 C.G로 촬영된 것인가?
우리 영화는 SF가 아니라 멜로 영화기 때문에 되도록 C.G가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했다. 영화의 약 5~10% 정도를 C.G로 처리했는데, 어떤 장면이 C.G인지 알려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퀴즈로 남겨두겠다.
▶<시월애>처럼 다른 시간대의 사람이 소통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나? 과학적인 고증은 얼마나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학계에서도 시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기 때문에 고증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난 각각의 시간대에 서로 다른 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죽은 성현(이정재)이 있고, 강아지와 놀고 있는 또 다른 성현이 있고.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간 개념을 뒤틀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성현이 인터넷을 통해 시간 구조에 관한 사이트를 뒤져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현이 본 사이트는 정확히 무엇인가?
M.C. 에셔라는 화가의 홈페이지다. 에셔는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에 집착했던 화가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다루는 이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삽입했다.
▶성현의 집에 '일 마레(Il Mare)'라는 이름을 달아준 이유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 집의 이름은 '포엠(Poem)'이었다. 근데 내가 연출을 맡게 되면서 이름을 바꿔버렸다. 너무 상투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 마레'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특별히 없고, 그냥 바닷가에 서 있는 집이니까 '바다'라는 뜻의 '일 마레'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영화 속에서 성현이 선물한 벙어리 장갑을 은주(전지현)가 바다에 떠내려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어떤 의도인가?
영화 속에 나오는 벙어리 장갑은 손과 손이 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건 두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가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그 장갑을 바다에 떠내려보낸 건 두 사람의 헤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장갑은 영어로 글로브(Globe)인데, 이건 'give'와 'love'의 합성어라고 들었다. 벙어리 장갑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중요한 소품이다.
▶감독으로서 두 배우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정재는 연기를 아주 잘했다. 이완과 긴장의 묘미를 잘 살렸고, 한 마디로 물이 오른 것 같다. 지현이는 연기 폭이 아직 좁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처음 지현이를 캐스팅했을 땐 이것보다 훨씬 연기를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전지현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영화 속 그녀의 직업이 성우라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나도 처음엔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직업 설정을 바꾸자니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빙하는 신을 줄였고, 더빙 신을 찍더라도 '악' 소리만 내는 수준으로 그쳤다.
▶항상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만 고집하는 것 같다. 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진 않나?
이젠 그렇게 할거다. 지금처럼 4,5년에 한번 씩 영화를 만들진 않겠다.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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