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기에 긴가민가한 아이디어도 명필름을 거치면 고급스럽고 시대 감각이 살아있는 영화로 빚어져 나온다”는 것이 그 이유.
명필름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접속’을 비롯해 ‘해피 엔드’를 거쳐 개봉 2주만에 서울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운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선구안과 기획력으로 장타를 날려온 ‘명가’의 수뇌부는 한 가족이다. 심재명 대표(37)와 제작이사인 그의 남편 이은 감독(39),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심대표의 동생 심보경 이사(33)가 그들. 서울극장 기획실에 근무하던 심대표가 92년 영화 홍보사 명기획을 차리자 김혜수 등 연예인 매니저를 하던 동생 심이사가 93년에 합류했고, 94년 심대표가 이감독과 결혼한 뒤 셋이서 95년에 명필름을 설립했다.
결혼 당시 이감독은 ‘파업전야’를 만든 장산곶매 출신의 운동권 영화인이었으며 심대표는 ‘결혼 이야기’의 광고 카피 ‘잘까 말까 끌까 할까’로 한창 뜨던 영화 마케터였다. 이감독이 영화 기획자 모임에 영화운동 서명을 받으러 갔다가 심대표를 만났다. 이들의 결혼에 대해 정지영 감독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라고 촌평할만큼 이들의 성향은 극과 극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사회민주주의가 된 게 아닐까”하는 이감독의 농담에 심대표가 “나는 상업영화에만 몰두했고 남편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했는데 다른 입장을 상호보완해 영화제작에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고 토를 단다.
자타가 공인하는 마케팅의 귀재인 심대표는 명필름에서 마케팅을 맡고 이감독은 현장 진행을, 심이사는 배우 섭외 스탭 관리를 각각 분담한다. 이감독은 “현실적 이상주의자”(심재명)인 반면 심대표는 “본능적 직관이 탁월”(이은)하고, 심이사는 “너무 진지한 두 사람에게 신세대적 감성을 공급해주는 역할”(심재명)이어서 삼각 궁합이 딱딱 맞아 돌아간다.
지금까지 만든 7편의 영화중 4편은 3명 모두의 동의하에 제작됐지만 ‘내부 반란’도 곧잘 일어난다.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섬’의 경우 심대표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영화로 돈 못번다”고 반대했으나 이감독의 고집에 밀려 빛을 보게 됐다.
어떤 영화를 만들까 고민할 때 이감독은 “해야 하는 이야기인가”를 생각하는 반면 심대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를 먼저 헤아리고 심이사는 “해 볼 만한지”를 검토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라고나 할까.
98년 겨울, 원작 소설 ‘DMZ’를 읽고 영화화를 제안한 사람은 이감독. “상업적 위험은 커도 진실의 힘이 담긴 영화”가 될 것 같아 독하게 밀어붙일 작정으로 말을 꺼냈지만 예상과 달리 ‘심자매’는 반대하지 않았다. 심대표는 “새천년을 앞두고 젊은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에서, 심이사는 “심각한 주제에 대한 시니컬한 농담도 주류 영화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됐으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풍부한 영화지식으로 무장한 박찬욱 감독을 섭외한 뒤 남은 일은 최대한의 리얼리티 확보를 위한 철저한 품질 관리. 그러다 시나리오 작업중이던 99년 6월 북한과의 서해 교전 사태가 터졌다.
“개봉조차 못할 것 같아 눈앞이 캄캄했지만 ‘의미있는 영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렇게 흥행이 잘 되리라고 예상조차 못했다.”(심재명)
심대표는 올해 4월 ‘섬’ 시사회 도중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곧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가 우릴 돕는구나!”하고 감격해 했다고.
“가족이기 때문에 피곤할 때도 많은데 지금까진 상호보완적인 면이 더 크다”고 자평하는 이들은 요즘 ‘가족기업’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발전적 해체’ 또는 ‘문어발식 확장’을 준비중이다. 심이사는 명필름 영화의 N세대 버전 격이라 할 영화들을 만들 ‘디엔딩 닷컴’ 일을 최근 시작했고 이감독은 명필름 영화들을 해외로 수출하고 국제적 감각을 수혈받을 수 있는 통로인 ‘명인터내셔널’(가칭) 설립을 생각 중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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