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터뷰]인기드라마 '좋은걸 어떡해' 작가 최윤정씨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36분


노래방에서 첫 곡을 고를 때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무조건 최신곡을 부르는 사람’과 ‘제일 자신있는 노래를 하는 사람’. 드라마작가 최윤정씨(32)는 전자에 속한다. 지난 금요일 밤, 단란주점으로 이어진 회식자리에서 그는 “처음 불러보는 건데…”라며 최신곡을 첫 곡으로 택했다.

“전, 모험심이 강한 편이거든요”

그는 노래를 썩 잘했다. 도전적인 ‘모험심’ 뒤에는 늘 이런 ‘자신감’이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 ‘기본 점수’는 나올 것이라는 노래 실력에 대한 자신감. 그가 집필 중인 KBS1TV 일일드라마 ‘좋은걸 어떡해’는 어쩌면 그에게 ‘신곡 도전’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좋은걸 어떡해’는 작가 경력 8년째인 그가 처음 도전한 일일극이다. 밤 8시30분대에 방영되는 홈드라마인 ‘좋은 걸 어떡해’는 이야기 전개가 절정에 오르면서 최근 한달 동안 연일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또 방송3사의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장 높은 점유율(47.5%)을 자랑한다(TNS미디어코리아조사, 전국 1000가구 대상).

인기 비결은 뭘까.

‘좋은걸 어떡해’는 단란한, 그러나 바람잘 날 없는 대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런저런 해프닝을 다룬 기존의 홈드라마와 달리 종래 밤 8시30분대 드라마의 ‘금기소재들’을 과감하게 다룬다.

결혼 석달만에 이혼, 이혼 한달만에 남편 친구와 재혼, 재혼 후 밝혀진 전 남편의 아이 임신, 그리고 시작된 낙태에 대한 고민….

‘자극적’인 소재이다보니 높은 시청률 못지않게 비난도 빗발쳐 KBS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저질작가’ ‘엽기적 드라마’를 성토하는 글이 하루에 300∼500통이 올라온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기는 인기다.

“하루는 어머니가 ‘KBS 인터넷 게시판 보지 마라’고 전화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저질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없는 드라마를 단지 ‘소재’나 ‘상황’ 만 놓고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드라마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의외로’ 결혼의 소중함과 ‘선택’의 중요성이다.

“‘나쁜 드라마’란 없다고 봐요. 잘못된 결혼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역설적으로 올바른 선택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지 않나요?”

그래서일까. 그는 ‘공영방송 드라마’ ‘가족시청시간대 드라마’ ‘홈드라마’의 모든 고정관념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드라마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상투어인 ‘청소년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어쩌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연세대 아동학과 87학번인 그가 방송 작가로 ‘데뷔’하게 된 것은 순전히 졸업논문 때문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졸업논문 주제는 ‘TV가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 당시 그가 내렸던 결론은 한마디로 ‘크다’.

그는 논문을 쓰기 위해 모니터한 방송 3사의 유아프로그램을 무참히 ‘작살’낸 뒤 반론을 듣기 위해 모니터 결과를 담당 PD들에게 보냈다. 당시 MBC ‘뽀뽀뽀’ 연출자는 “맹랑하지만 제법 글솜씨는 있다”며 구성작가로 일해 볼 것을 권유했다. 이후 그는 EBS에서 수백편의 캠페인드라마와 라디오드라마를 썼다.

스물다섯살 때인 93년 MBC에서 ‘김가이가’를 통해 드라마 작가로 본격 데뷔했다. 이후 ‘짝’ ‘프로포즈’, ‘웨딩드레스’ 등 9편의 미니시리즈와 주말극을 썼다.

가정 생활을 섬세하게 그리는 ‘홈드라마’를 쓰고 있지만 그는 미혼. 현재 그는 보조작가 2명과 함께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미혼이기 때문에 쓸 수 없는 부분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환경’을 극복하는 글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 그의 고민이다.

그가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한계는 ‘결핍에 대한 결핍’. 검사였던 아버지와 디자이너였던 어머니의 외동딸로 유복하게 자란 그는 “경제적인 결핍에 대해서는 생생하게 쓸 자신이 없다”며 “정신적인 결핍이나 ‘선택’의 문제는 내가 계속 써나가고 싶은 주제”라고 말했다.

큰 인기를 끌었던 미니시리즈 ‘프로포즈’처럼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놔두고 굳이 이혼녀와 임신, 낙태라는 ‘안불러본 곡’에 도전했지만 그의 ‘점수’(시청률)는 하여간 높다. 물론, 노래방 점수가 높게 나온다고 반드시 노래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 KBS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청자 비판 요지

△약사가 그렇게 무식한지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았다. 여주인공 수경이 일류대를 졸업한 약사로 나오는데 피임법은 물론 임신한 것조차 몰랐다는데 황당하다.

△이혼하고 곧바로 남편 친구와 재혼하고 또 임신까지 했다는 상황이 짜증난다.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전남편 아이를 받아줄 남자가 어디있나. 아무리 드라마지만 어느정도 현실에 맞게 써달라.

△연장방송한다는 데 시청률 오르니까 고무줄 늘리듯 질질 끄는 것 같다.

△가족시간대에 방영되는 공영방송의 인기 드라마로서 내용이 너무 비윤리적이다. 차라리 심야시간대에 내보내라.

△여주인공의 아이가 결국 유산되는 것으로 설정됐다는데 생명경시 드라마다. 해피엔딩을 위해 16주가 넘은 아이를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여주인공이 이혼한 후에도 전남편에게 뺨을 맞는 등 너무 나약하게 그려진다. 배웠다는 여자가 그렇게 무기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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