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러브 오브 시베리아>,사랑에도 스케일이 있다

  • 입력 2000년 10월 5일 19시 06분


“영국의 증기기관차처럼 러시아에선 질투가 국가의 원동력이다.”

영화속 이 한마디의 대사야말로 ‘러브 오브 시베리아’(The Barber of Siberia)의 매력을 함축하고 있다. 얼어붙은 설원과 광활한 시베리아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2시간40분에 걸쳐 펼쳐지는 사랑의 서사시라는 점에서 영화는 분명 ‘닥터 지바고’에 견줄만하다. 또 사랑을 찾아 천리길을 달려가고도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다는 점에서는 ‘해바라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모든 것이 극단적인’ 러시아적 매력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19세기말 제정 러시아. 모스크바행 기차에 몸을 실은 미국 여인 제인 캘러한(줄리아 오몬드)은 1등석으로 몰래 숨어들어온 한 무리의 사관생도를 만난다. 캘러한은 그들을 능숙하게 물리치지만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로 화답하는 안드레이 톨스토이(올렉 멘시코프)와 서로 끌리게 된다.

캘러한은 시베리아 수림용 특수벌목기 ‘시베리아의 이발사’를 개발중인 더글라스 맥클라켄(리차드 해리스)이 러시아정부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고용한 로비스트. 맥클라켄의 딸로 위장한 그녀의 임무는 황제의 측근인 레들로프 장군(알렉세이 페트렌코)을 유혹, 납품권을 따내는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레들로프는 톨스토이의 사관학교 교장이다. 캘러한은 남녀문제에 능숙한 미국인답게 일과 사랑을 노련하게 동시진행시킨다. 하지만 ‘사랑과 진실앞에서 중간이란 있을 수 없는’ 톨스토이는 사랑을 위해 레들로프에게 정면도전함으로써 파멸의 구렁텅이에 온몸을 던진다.

99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이 작품에 대해 서구평론가들은 ‘할리우드적 냄새가 짙다’며 비판의 칼날을 높이 세웠다. 하지만 영화는 한겨울 얼음판에서 웃통을 벗고 패싸움을 벌이거나 보드카에 만취해 광란을 벌이는 ‘팬케익축제’와 바로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용서를 비는 ‘용서의 주일’ 등의 묘사를 통해 오히려 자기파괴적이면서도 모성애 가득한 러시아적 감수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 비판의 칼날은 실상은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이 직접 연기한 알렉산드르 3세를 위엄넘치는 인물로 묘사하는 등 러시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혐의를 겨냥한 것이다. 실제 러시아로선 국가적 제작비(4500만달러)가 투입된 이 영화는 98년 러시아에서 ‘타이타닉’의 두배가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미할코프의 대통령출마설이 나돌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러시아 대사보다 영어대사가 더 많고 모차르트가 짜르보다 더 위대한 영웅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를 그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횡포다. 이 영화의 진짜 민족주의적 약점은 러시아의 국민적 배우라는 이유로 40대의 멘시코프를 스무살 청년으로 등장시킨 점이다.

‘위선의 태양’으로 9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을 정복한 미할코프는 이 영화로 진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까지 불사한 친형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도 이루지 못한 대중적 신기루마저 쟁취했다. 영화속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원작이 같다는 점에서 원제의 뜻(시베리아의 이발사)을 곱씹는 맛도 새콤달콤하다. 15세이상. 14일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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