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영화제]마흐말바프 일가, 가족이 모두 영화감독

  • 입력 2000년 10월 10일 19시 10분


부모와 3남매, 한가족 5명이 모두 영화감독.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이란 마흐말바프 감독 일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13일 열리는 ‘마흐말바프가의 영화들’ 특별전 참석차 부산에 왔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43)는 이란을 대표하는 중견감독이며 큰 딸 사미라(20)는 올해 ‘칠판’으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탔다. 또 3남매의 새어머니인 마르지예 메쉬키니(31)는 올해 데뷔작 ‘내가 여자가 된 날’을 만들었고 아들 메이삼(19)은 누나의 영화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미라는 칠판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로 데뷔했다. 심지어 막내딸 하나(12)까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영화 ‘이모가 아팠던 날’을 부산에서 선보인다. 하나는 “나는 어리다고 비디오로 찍고 언니는 필름으로 찍었다”고 투정하며 “언니가 데코파쥬(시나리오를 촬영 콘티로 옮기는 일)를 잘 못하므로 그건 언니와 상의하지 않는다”고 ‘어른 티’를 냈다.

모두 감독이라 해서 이들이 취미삼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정부의 검열과 외부간섭으로 영화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은 집과 차를 팔아 영화를 만든 뒤 돈을 벌면 되찾는 방식으로 ‘가진 것 전부’를 걸고 영화를 만든다. 모두 정규 교육을 포기하고 1996년에 모흐센 감독이 세운 ‘마흐말바프 영화학교’를 다녔다는 것도 이들의 특징.

“사미라가 16세 때 영화공부를 하려고 학교를 그만뒀는데 대학에서 영화를 배우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해 대안학교를 세웠다. 그 때 가장 어린 학생이 막내딸 하나였다.”(모흐센)

반정부활동을 하다 17세에 체포돼 4년반 동안 옥살이를 했던 모흐센감독은 출옥 후 혼자서 어렵게 영화와 세상을 배운 자신의 갈증을 떠올리며 영화학교를 ‘집이자 일터이며 학교’로 운영했다. 아내와 3남매는 영화 뿐 아니라 운전 수영 요리 영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곳에서 배웠고 모흐센의 영화 조감독을 하며 현장을 익혔다.

모흐센감독이 “사진작업실을 팔아 카메라를 사고 카메라 작동법을 다 배우면 그걸 팔아 편집기기를 사는 식으로 운영한다”며 “4명 모두 공짜로 다녔으니 좋은 학생들이 아니다”고 농담을 하자 사미라가 “아버지도 우리를 공짜 스탭으로 쓰지 않았으냐”며 딴지를 건다.

이들 일가족은 오랜만에 부산에서 ‘상봉’했다. 마르지예는 시카고영화제에서, 모흐센감독은 촬영장소 섭외차 갔던 아프가니스탄에서 곧장 부산으로 왔다.

모흐센감독은 “세상은 혁명으로 바뀌지 않는다”면서 “더 중요한 건 생각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어로 ‘카페트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인 성(姓) 마흐말바프처럼, 마흐말바프 일가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는 카페트를 짜는 중이다.

<부산〓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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