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과 김광석.
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자라난 노래운동의 뜨거운 두 상징이지요. 안치환님이 울분을 토하며 이 땅의 억압과 부정을 직선적으로 공격하는 데 어울리는 목소리를 지녔다면, 김광석님은 그 고통을 보듬어 안으면서 반성과 사색을 만들어내는 약간은 슬픔 어린 둥근 목소리의 소유자지요. 물론 세월의 흐름과 함께 두 상징은 넉넉하고 단단해졌습니다. 안치환님이 '소금인형'이나 '내가 만일', 또 다시부르기 음반 '노스텔지아'(1997년)를 통해 감춰두었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드러내는 동안, 김광석님도 4집 앨범(1994년)의 타이틀곡 '일어나'를 발표하며 슬픔과 좌절을 딛고 자신의 생을 책임지려는 꿋꿋한 의지를 노래하기도 하셨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광석님은 그 굳은 의지를 충분히 노래로 표현하지 못한 채 1996년 정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고는 짧았고 소문은 무성했으며 안타까움과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긴 침묵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네요.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불멸'에서 예술가의 창작활동은 불멸에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지요. 나는 100년도 살지 못하고 죽겠지만 나의 작품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고, 그 작품을 통해 나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예술가가 남긴 작품이 망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작품이 탄생한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 보편의 차원으로 떠오를 수 있느냐의 문제지요.
김광석님의 노래는 김광석님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했지만'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은 언제 들어도 그 시절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김광석님의 노래를 들으며 자주 기형도님의 시를 꺼내 읽습니다. 요절한 기형도님 역시 10년이나 어린 연배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지요. 두 분의 작품에는 모두 사랑에 대한 열망과 실연의 슬픔 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광석님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그 텅 빈 방과 기형도님의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 집')의 그 빈 집은, 서툰 사랑을 잃은 모든 청춘들이 홀로 눈물 흘리는 곳이겠지요.
이제는 김광석님과 어떤 개인적인 경험도 나누지 못한 이들까지 합세하고 있군요. '이등병의 편지'는, 비록 영화의 히트를 등에 업은 것이지만, 김광석님의 노래가 갖는 포용력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동년배의 감상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연배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겠지요. 허나 저는 김광석님의 동년배들이 김광석님의 노래에 대해 가지는 느낌만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가수와 나이가 비슷하고 공통된 경험을 나누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그 가수의 노래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김광석님은 또한 감동 잘 하는 영혼이었습니다. 김광석님이 돌아가신 1996년에는 '김광석의 인생이야기'와 '김광석의 노래이야기'란 제목으로 두 장의 실황음반이 나왔지요. 처음에 저는 이 음반을 사는데 주저했습니다. 대부분 이미 들은 노래들인 데다가 망자(亡者)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꺼림칙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결국 구입한 그 음반을 통해 김목경님이 만들고 노래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김광석님이 다시 부르게 된 이유를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감동의 순간 말입니다.
"다음 보내드릴 곳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고 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 원래 김목경씨가 불렀었고 제가 '다시부르기 두 번째'에 다시 불렀죠. 89년 여름 버스 안에서 이 노래 듣고 울었어요. 다 큰 놈이 사람들 많은 데서 우니까, 참느라고, 창피해서, 이으으윽 뭐 이러면서 억지로 참던 생각납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보내드릴께요."
김목경님이 노래를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철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김광석님은 그 노래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눈물을 참던 그때 벌써 그 노래는 김광석님의 가슴으로 들어와서 생의 한 부분이 되었지요.
영화음악이 되었든, 인생이야기가 되었든, 김광석님의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김광석님을 불멸에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인터넷에 팬페이지까지 만들며 김광석님의 노래를 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내가 어디서 어떻게 김광석님의 어떤 노래를 듣고 눈물 흘렸는지 그 감동의 순간들을 나누고 싶군요.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이등병의 편지'가 남한군 이등병 이병헌이 북한군 이등병 송강호에게 보내는 편지인 줄로만 알고 있는, 햇빛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조카의 손을 잡고 참석하겠습니다.
이 짧은 편지 역시 '이등병의 편지'만큼이나 김광석님의 불멸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소설가 김탁환 (건양대 교수)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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