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영화는 오랫동안 '삼류'라는 편견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에로영화가 다 '삼류'였던 건 아니다. 시대적 분위기와 함께 흥망성쇠를 걸어온 에로영화의 역사. <목구멍 깊숙이>부터 <젖소부인>까지, 에로사극, 핑크무비, 하드코어 포르노의 은밀한 유혹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평론가 김의찬이 3주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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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사극과 패러디 전략
에로영화는 시류를 타기도 한다. 시사적인 뉴스가 장안에 화제로 떠오르면 곧 비슷한 아이템의 에로영화가 제작되어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한다. 전화방이 물의를 일으키면 <전화휴게방>이라는 에로영화가 눈에 띄고 <빨간 마후라>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빨간 딱지>라는 에로물이 시중에 깔리곤 한다. 한때 몰래카메라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자 아예 몰래카메라 기법을 빌려온 <모텔 성인장에서 생긴 일>이라는 영화가 등장한 적도 있다.
앞서 말했듯, 국내 에로영화는 시장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조악한 완성도나 기존영화의 제목 및 내용을 차용하는 것으로 인해 특유의 '독창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혁신적인 에로영화의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린 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성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비로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성 표현을 스크린에 조금씩 섞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호스테스 영화'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던 이른바 매춘여성에 대한 묘사는 이후 본격 에로영화로 넘어가면서 몇 가지 시리즈로 전승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작품이 <애마부인>이다. 1982년작 <애마부인>은 정인엽 감독 작품으로 가정에 소홀한 남편과 육체적 갈망에 사로잡힌 한 여성의 대립을 축으로 한다. 안소영이라는 여배우를 무명에서 일약 '육체파 스타'로 떠오르게 한 <애마부인>은 비록 내용 면에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가슴 등을 주요하게 강조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침체해 있던 한국영화계에 탈출구를 마련해주었던 것은 물론이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1996년까지 총 13편이 제작됐다.
이장호 감독도 평가할 만하다. 그는 <무릎과 무릎 사이>와 <어우동> 등을 만들어 흥행 면에서 에로 장르를 안정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특히 1985년작 <어우동>은 에로 사극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어우동이라는 기생이 억압적인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몸을 무기로 뭇 남성을 희롱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줄거리다.
<어우동>은 사극이라는 틀 안에서 농염한 에로티시즘을 성공적으로 표출해냈으며 방기환의 원작소설을 성공적으로 영상화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영화가 발표될 당시엔 한 나라의 임금이 계곡에서 기녀의 몸을 핥는 등의 표현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어우동> 외에 <산딸기>와 <뽕> 등의 시리즈물을 낳은 에로 사극의 전통은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90년대에 한국의 에로영화는 <변금련> 시리즈와 <성애의 여행> 그리고 <젖소부인> 시리즈 등을 낳음으로써 장르를 이어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최근 들어 비디오용 에로영화는 지나친 패러디 전략에 의존함으로써 더 이상 창조적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진짜 야한 걸 보여다오
최근 한국영화 중 성에 관한 노골적 영상으로 주목을 끈 작품이 몇 편 있다. <노랑머리>와 <거짓말> 그리고 <미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예상외로 성 표현 수위도 그리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에로틱함을 일종의 홍보수단으로 삼은 정도에 지나지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위 영화들 중 명백하게 '에로영화'라 칭할 수 있는 영화가 전무함은 그러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노랑머리>와 <미인>의 경우엔 평범한 드라마이거나 멜로적 성격이 강한 영화임에도 간간이 에로 영화식 포장을 두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거짓말>은 작가주의와 상업영화 사이의 기묘한 지점을 잡아 만든, 일종의 예술영화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주변에선, 에로틱함을 강조하는 영화들만 있을 뿐 진짜 '에로영화'는 찾아보기 힘든 아이러니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아직 등급외전용관이 없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성 표현의 수위가 높은 영화가 제작된다 하더라도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마땅한 통로가 없다면 사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에선 한때 성인영화 전용관이 800여 개가 넘는, 에로영화의 호황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세인들의 관심도 미국 평단이 1970년대 에로영화에 비교적 긍정적인 평을 내리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유는 '비디오'라는 매체 때문이었다.
극장용 에로영화 대신 비디오로 제작한 포르노물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간 것이다. 싼값에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볼 방법이 생긴 것. 기실 에로영화의 이러한 '애로사항'에 관한 내용들은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부기 나이트>는 싸구려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에 대한 영화'다. 나이트 클럽에서 포르노영화 감독 잭의 눈에 띈 에디는 '더크 디글러'라는 예명으로 포르노 스타가 된다. 성공의 기쁨을 맛보며 출세가도를 달리던 에디는 곧 마약 중독에 빠져들고 영화판을 떠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에로영화의 마력은 남미축제인 카니발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들은 잠시의 쾌락을 위해 꼬박 1년을 준비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의 쾌락을 카니발의 화려한 행렬에 쏟아 붓는다. 에로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마치 축제에 참석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육체와 육체가 뒤엉키고, 거기엔 성과 죽음, 때로는 진지한 메시지가 첨가되어 보는 이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한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의 주인공 에디는 싸구려 영화판을 전전하다가 마약과 섹스에 중독된다. 어느새 프로로서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자멸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에로영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포르노그라피의 역사가 요약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좀더 극심한 쾌락을 원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는 점차 저열하고 값싼 것들로 대체되어간다. 이 와중에 누구는 타락의 길을 걷고, 누구는 돈방석 위에 올라앉는다.
앞으로 영화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부기 나이트>는 이런 질문에 속시원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돌아온 탕아 에디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 전, 자신의 '물건'을 거울 앞에 꺼내보면서 "넌 스타야"라며 중얼거리는 장면이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부기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은 뭔가 명확한 예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눈앞에 펼쳐진 쾌락을 즐기되, 이것이 작위적인 '쇼'임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끝).
김의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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