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張藝謀)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우리들 마음속 사진첩에서 우연히 발견한 흑백사진 같은 영화다. 사진속 풍경이나 구도가 아름답지 않아도 그 사진이 머금고 있는 사연만으로 우리들 가슴을 적실줄 알기 때문이다.
포장도로도 깔리지 않은 중국의 산골마을. 40년간 그 마을 교사였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한겨울 외아들이 고향을 찾는다. 백발의 어머니는 읍내 병원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황토길을 걸어서 운구할 것을 고집한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만 남은 마을에선 난색을 표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설득하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한다.
여기까지 흑백으로 진행되던 화면은 갑자기 컬러로 바뀌고 스무살 아버지와 열여덟 어머니가 마을에서 처음 만나던 때로 돌아간다. 순박한 소녀 자오 디는 황토길 먼지 자욱한 벽촌에 갓 부임한 총각선생님에게 마음을 뺏기고는 마을의 역사상 처음으로 연애사건을 일으킨다. 하지만 요란할 것 하나 없다. 학교 공사장에 밥을 실어나르며 자신의 음식을 선생님이 먹어주길 바라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제일 좋은 그릇에 담아가거나 선생님이 글읽는 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길을 돌아 먼 우물에서 물을 길어나르는 게 전부다.
선생님은 그런 디의 마음을 알고 머리핀까지 선물하지만 기쁨도 잠깐, 디로선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유로 도시로 소환된다. 그가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던 디는 약속한 날 그가 나타나지 않자 눈보라 속을 헤쳐가다 황토길에 쓰러진다.
다시 흑백화면. 아들은 그제서야 어머니가 그 황토길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자 고집하는 이유를 깨닫고 그 소원을 들어들이기 위해 일꾼을 사들인다. 하지만 아직 더 큰 감동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자오 디 역의 장쯔이(章子怡)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보석처럼 빛난다. 도시로 떠나는 선생님에게 줄 만두요리를 안고 허겁지겁 산길을 뛰다 그릇을 깨뜨리고 선생님이 선물한 머리핀마저 잃어버린 뒤 울먹이는 그의 연기는 ‘내 마음의 풍금’에서 전도연의 연기를 능가한다. 한때 ‘색채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화려한 영상을 자랑하던 장이머우감독이 소박함에서 눈부신 이야기를 건져내는 장인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즐겁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4일 개봉. 12세이상.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 관련기사 |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