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단적비연수’는 ‘은행나무침대 2’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은행나무침대’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 ‘은행나무 침대’에 묘사됐던 전생(前生)보다 더 앞서는 전생을 소재로 삼았다.
고대의 어느 한 시기, 신산 기슭에 살던 매족은 천하를 얻으려 화산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다 신산의 저주를 받아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난다. 매족의 여족장 수(이미숙)는 부족의 재건을 위해 화산족의 왕족을 유혹해 비(최진실)를 낳는다. 비를 제물로 바쳐 신산의 맥을 끊는 것이 매족이 부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그러나 비는 죽음 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화산족에게 맡겨지고, 단(김석훈), 적(설경구), 연(김윤진)을 벗삼아 자란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비는 단과 사랑에 빠지지만, 엇갈린 인연의 비극은 이들을 비켜가지 않는다. 적은 비를 연모하고, 연은 그런 적을 사랑한다. 불길한 사건들 이후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비는 화산족의 불행을 막기 위해 신산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복잡한 줄거리의 가닥이 잡힐 때까지 약간 어수선하고 단,적,비,연의 어린 시절 묘사가 너무 긴 초반부를 지나면 이 영화가 데뷔작인 박제현 감독이 ‘쉬리’의 시나리오를 공동작업했던 이력이 장면마다 드러난다. ‘쉬리’처럼 비극적 멜로와 액션, 두 테마에 고른 비중을 둔 이 영화에서 처연한 눈빛으로 사랑하는 사람인 적을 향해 화살을 겨누는 연은 같은 배우가 연기한 ‘쉬리’의 여전사 이방희와 아주 흡사하다. 멜로의 사이 사이에 자주 배치된 속도 빠른 전투장면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찍은 거친 화면으로 긴박감을 자아낸다.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고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의 중심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를 사랑하는 단과 적이 놓여 있다. 운명에 순응하는 단의 조용한 애정과 운명을 거스르려는 적의 거친 열정, 이별까지도 받아들이는 사랑과 집착하는 사랑이 이 영화의 주된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비극적 구도에 비해 감정의 상승 효과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이 영화는 출연배우들이 이전 영화에서 성공적으로 구축한 이미지에 꽤 많이 기대고 있기도 하다. ‘쉬리’의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연 뿐 아니라 끝내 도달할 곳에 이르지 못하고 파멸하는 적을 연기한 설경구가 광기어린 집착을 보여줄 때면 ‘박하사탕’의 영호가 오버랩된다. 수 역을 맡은 이미숙은 다른 네 명의 배우에 비해 출연 장면이 많지 않으나 부족의 재건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여족장의 카리스마를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11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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