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용병들의 이름도 익히고 그 동안 유니폼을 갈아입은 선수들의 면면도 확인하느라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예닐곱 경기를 치른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요즘 TV에서 만나는 스타는 아무래도 농구 선수들인 것 같습니다.
1라운드 돌풍의 핵은 삼성 썬더스과 LG 세이커스입니다. 파죽의 6연승을 거둔 썬더스는 두 용병과 주희정, 문경은에 이규섭 선수가 가세하면서 한층 강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속공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요. 그러나 저는 자꾸 세이커스의 경기에 눈길이 갑니다. 이충희 감독의 뒤를 이어 부임한 김태환 감독의 공격 농구에 매혹되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이적생 조성원 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수의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후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상민-추승균-조성원으로 이어지는 내국인 3인방과 3년 연속 용병 MVP에 빛나는 맥도웰은 영원히 현대맨일 것이라고 여겨 왔던 탓입니다.
이런저런 풍문이 들려왔지요. 현대구단이 겉으로는 지난 시즌 우승한 SK 나이츠와 맞서기 위해 키가 큰 포워드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연봉상한제(샐러리캡) 때문에 이상민 선수를 붙들어두기 위해 조성원 선수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차피 프로의 세계이니 돈이 개입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겠지요. 허나 그 때문에 고향과도 같은 현대 걸리버스를 떠나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는 조선수의 마음이 얼마나 씁쓸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절치부심의 결과일까요? 조선수의 활약은 눈에 부실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외곽에서 3점 슛이나 던지는 선수로 인식되어 왔는데, 이번 시즌부터는 1m 80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용병들의 장대숲을 헤집고 들어가서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는군요. 매 경기 30점이 넘는 가공할 만한 득점력에 3점 슛 순위에서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수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지난 시즌 7위로 바닥을 쳤던 세이커스가 2위권에 진입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경기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접을 길이 없네요. 혹시 조선수가 이적의 설움을 씻어내기 위해 오버페이스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프로농구는 단 시일에 끝나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겨울 내내 경기를 펼치는 마라톤과도 같으니까, 무엇보다도 선수 스스로가 자신의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 조선수가 세이커스에서 맡은 역할을 보면, 흡사 기아 엔터프라이즈에서 해결사로 활약한 전성기의 허재 선수를 방불케 합니다. 조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슬럼프와 부상의 위험이 큰 것이겠지요.
조성원 선수!
이제는 세이커스의 유니폼이 어색하지 않겠군요. 한솥밥을 먹던 이상민, 추승균 선수와 맞서도 평점심으로 돌아올 수 있겠군요. 우리네 인생이란 결국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아웅다웅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삶의 한 과정이라고 여기고 섭섭함도 억울함도 툴툴 털어버리기 바랍니다.
조성원 선수는 비로소 어떤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프로의 냉혹함이란 곧 자본의 냉혹함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낀 조선수는 코트에 설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 프로는 오직 실력으로만 말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여 더욱더 자기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고 여기십니까? 물론 실력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든 세계이지만, 저는 조선수가 슛만 잘 던지는 선수가 아니라 세이커스의 선수들과 잘 융합하면서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이끄는 대선수로 자라나기를 기대합니다.
문득 몇 년 전 스포츠 채널을 통해 본 마이클 조던의 경기들이 눈앞을 스치는군요. 마이클 조던의 위대함은 슛 감각과 드리블 실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카고 불스의 스타 선수들을 한 마음으로 결집시키는 친화력과 카리스마적인 지휘 능력에 있었지요. 현대에서는 그저 빈 자리로 찾아들어 슈팅만 날리던 조성원 선수가 내외곽을 마음껏 휘젓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기쁩니다.
캥거루 슈터, 클러치 슈터 조성원, 화이팅!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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