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한밤의 TV연예" 중독증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9시 03분


어젯밤 <한밤의 TV연예>를 봤다. 개편을 했다더니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근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MC만 중후한 아저씨로 바꾸고 리포터만 지적인 아나운서로 바꾸면 갑자기'고품격 연예 정보 프로그램'으로 바뀌나?

사실 난 <한밤의 TV연예> 중독자다. 매주 <한밤의 TV연예>를 보며 "어머, 그래? 쟤들 둘이 그래?" "쟤, 거짓말하는 것 좀 봐..."하며 흥분한다. '연예인의 사생활도 보호받아야 한다!' 고 해도 귀 막고 봤다. 남 잘되는 일보다 남 안되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속물근성인지 누구랑 누구랑 스캔들 나고 누가 사고 치고 그런게 왜 그렇게나 재미있는지...

게다가 <한밤의 TV연예>는 시간과 정열과 돈을 아끼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연예계 뒷얘기에 관한 한 밀착, 심층, 독점 취재는 기본이요, 한마디라도 듣겠다는 리포터의 끈질김과 집요함, 사건의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파헤쳐주는 세심함, 작은 껀수라도 놓치지 않는 철저함, 시도때도 없이 중계차까지 띄워대는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최진실 CF 현장 취재하기 위해 발리까지 따라가고, 대마초 연예인 취재한다고 경찰서 가서 죽치고, 서태지 룸살롱 간 거 취재한다고 룸살롱 여종업원 인터뷰하고, 이혼한다는 연예인 잡으러 공항을 나가는데는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이게 내 알 권리였나?" 싶은 것까지 시청자의 알 권리 운운하며 철저히 파헤쳐 만천하에 알려주는 투철한 직업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요즘 <한밤의 TV연예>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할 프로그램 1순위가 된 듯하다. 무슨 조사만 했다하면 나쁜 프로그램 1등이니 나 같은 골수중독자에겐 황당한 상황이다. 아니, 지들도 다 같이 재밌다고 봐놓군 이게 무슨 경우인가?

<한밤의 TV연예>가 무서운 건 대다수 시청자를 '한밤스타일'에 길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한밤의 TV연예>를 보다 다른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 "아니, 취재 저렇게 밖에 못하나!" 소리 나온다. 염치불구하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한밤 리포터들을 보다가 이해심 많은 다른 프로그램 리포터를 보면 짜증부터 나니 이것도 금단현상인가?

<한밤의 TV연예>는 MC랑 리포터 바꿔봐야 소용없다. '한밤중독자'들은 어차피 MC 볼려구 <한밤의 TV연예> 보는 건 아니다. 좀더 화끈하고 좀더 적나라한 무엇을 봐야 직성이 풀리게 된 나 같은 여자, 어떻게 책임질껀가? 어떻게 제정신으로 돌려놓을껀가?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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