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드라마를 진행하며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을 다룬 이 요절복통 코미디 영화에서 악조건을 딛고 방송의 마무리를 짓고야 마는 등장인물들의 즐거운(?) 고통은, 그 옛날 라디오가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녹음을 끝내고 나면 난 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곤 했고, 실수하면 안된다는 긴장감에 시달렸던 한 선배는 “난, 일찍 죽을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영화는 라디오 녹음실 부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치 SF영화처럼 그렸다. 소리가 빚어내는 상상의 세계는 무한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에서 눈에 ‘보이는’ 우주를 만들려면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야 한다. 그러나 ‘웰컴 미스터 마꾸도르나르도’가 보여주듯, 라디오 방송에서는 “지금 우주 공간에 맥도날드가 떠있습니다”라며 진공청소기 바람으로 효과를 내면 청취자들의 상상력에 실려 금새 눈앞에 우주가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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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내가 결혼전에 라디오 드라마 ‘변강쇠전’에서 옹녀 역을 했을 때 온갖 상상력을 총동원해 만든 ‘듣는 베드신’은 아마 ‘보는 베드신’보다 훨씬 더 실감나는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녹음 후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 있었지만….
요새는 효과음 CD가 있어 편리하지만, 어느 라디오 방송이나 똑같은 파도소리에 똑같은 새, 똑같은 아이 울음소리가 나오는 것을 듣고 있으면 씁쓸하다. 불꽃놀이 효과를 위해 온 몸으로 부딪히며 소리를 만들어내던 이 영화 속 늙은 ‘효과맨’은 방송을 성공적으로 끝낸 뒤 PD에게 “너무 기계에만 의존하지 마라”는 말을 남긴다. 그의 말은 아무리 속도와 효율성이 중요해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 가치가 있다는 이 영화의 주장을 대변한다.
초보작가가 온 힘을 기울여 쓴 드라마 원고가 스타 성우, 편성국장, 광고주를 거치며 거의 걸레가 됐지만 결국 ‘사람의 진심’을 배반해서는 안된다는 등장인물들의 용기로, 소박한 초보작가의 꿈은 실현된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모처럼 박장대소할 수 있는 즐거운 영화일 뿐 아니라, 때로 볼품없고 무모하지만 순수함과 용기를 잃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드라마다. 참, 실제 성우들의 코미디 연기도 일품이다.
(성우·‘소리사냥닷컴’ 대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어떤 영화?▼
라디오 드라마 공모전에 ‘운명의 여인’이 당선된 초보작가 미야코(스즈키 교카)는 밤11시 첫 생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방송 시작 전, 스타 성우 노리코(도다 게이코)가 여주인공의 극중 이름이 마음에 안든다고 트집을 잡는다. 할 수 없이 여주인공 이름을 리츠코에서 메어리로 바꾼 뒤 방송을 시작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잇따르고 스토리는 엉망이 된다. 미야코와 성우들, PD 구도(카라사와 토시아키) 등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생방송 드라마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일대 전쟁을 벌인다.
원제는 ‘라디오의 시간’으로 지난해 일본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남녀주연상 등 12개 부문의 상을 석권했다. 연극무대에서 연출과 극작가로 이름 날렸던 미타니 코키의 감독 데뷔작. 등장인물들의 개성, 대사의 생기를 듬뿍 살려낸 각본과 연출력이 뛰어나다. 극중 성우를 연기한 배우들은 대부분 실제 성우들이라고. 2일 개봉. 전체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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