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은 같은 시간 맞붙은 경쟁사의 메인뉴스인 밤 9시 뉴스의 시청률을 눌렀던 ‘일등공신’인 만큼 SBS가 마련한 쫑파티 역시 성대했다. 1인당 3만원은 족히 됨직한 여의도의 한 고급 연회장에서 열린데다 송도균사장 등 간부들도 참석했다. 종방기념 시계도 나눠주고 사장의 ‘금일봉’도 전달됐다. “SBS 창사이래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 이라는 찬사부터 “‘순풍…’ 인기에 힘입어 그동안 출연자들이 찍은 CF만 해도 50편”이라는 뒷얘기까지 화제가 만발했다.
그러나 잔치집이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서글펐다. 오지명 송혜교 미달이 등 주요 연기자들이 불참했다. 선우용녀는 연기자 대표 인사말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35년간 연기 인생 중 지난 5개월만큼 가슴아팠던 적이 없다”고 말한 뒤 눈물을 쏟았고 장내는 곧 조용해졌다.
마지막 5개월동안 ‘순풍…’은 솔직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98년 3월 첫 방영때부터 ‘순풍…’을 맡았던 김병욱PD와 5명의 작가 전원이 올 6월 손을 뗐다.
일주일 닷새는 대본에, 나머지 이틀은 녹화와 편집에 매달리는 생활을 2년 넘게 해 온 이들이 가장 힘들어한 것은 기약없는 연장방송이었다.
김PD는 “이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연장을 거듭하는 동안 주요 출연자들이 사라졌다. 아버지 오지명을 비롯해 네 딸 중 세 딸(김소연 이태란 송혜교)과 사위(김찬우)가 나가 사실상 ‘가정파탄’ 상태였다. 권오중 허영란 표인봉도 빠졌다. 당연히 시청자의 비난과 실망의 목소리도 커졌다.
작가는 “(방송사가) 종영 시점만 분명히 해 줬어도 이야기를 잘 마무리 했을 텐데…”하며 서운해했다.
이미 끝내야 하는 프로그램을 “대안이 없다” “그래도 고정 시청률은 나온다”는 이유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방송 현실이다. 성대한 쫑파티를 열어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좋은 작품을 명예롭게 끝맺도록 하는 것이 방송사의 역할이 아닐까.
18일부터 후속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시작된다. 이를 맡은 김PD는 “아무리 시청률이 좋아도 1년만 하고 무조건 끝내기로 연기자와 맹세했다”고 말했다.
이번엔 정말, 웬만하면 그들의 뜻을 꺽지 말았으면 좋겠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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