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여전히 새로운 문화가 자라고 있었다. 먹물 냄새 나는 팍팍한 문화가 아니라 과학과 함께 발전해온 미래 지향적 문화, 바로 영화 말이다.
중국 영화가 걸어온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 나왔다. 이종희씨가 쓴 <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책세상 펴냄).
굳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서구 영화 속에서 중국은 신비로움 밖에 가진 게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자연히 서구 영화를 통해 중국문화를 제대로 알 길은 묘연해졌다. 장이모우나 첸 카이거 같은 거장 감독이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면 지금도 중국은 서구인들이 마음대로 상상해낸 서툰 이미지 안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선입견을 딛고 '가장 중국적인 것으로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낸 몇몇 중국 영화인들에게 매료됐다. 장이모우나 첸 카이거는 중국의 위대한 전통문화로 서구인들의 이질적인 입맛을 공략한 감독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위대한 문화 사절단이나 다름없었다.
중국 베이징사범대학 예술과에 재학중인 저자는 중국 제5세대 감독을 줄기 삼아, 개방화 이후 중국영화의 현재와 중국영화의 밑둥이 된 무성영화 시절까지 섬세히 파고들어 간다.
따지고 보면 중국영화의 전성기는 5세대 작가들이 출현했던 80년대가 아니라 상하이를 중심으로 영화가 번성했던 3,40년대였다. 그때 중국은 완령옥 등의 스타 배우를 배출했다.
파리에서 영화가 탄생한 바로 그 이듬해 중국에도 영화라는 신매체가 들어왔다. '서양 그림자극'이라 불렸던 영화는 곧바로 중국 대중들을 매료시켰다. 영화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데까지 도전한 것은 1905년의 일. 베이징 펑타이 사진관에서 제작된 <정군산>이 중국 최초의 영화다. 그후 중국 정치가 격동기를 겪었던 만큼 영화도 수많은 격동기를 거쳤다.
문혁 시대를 지나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을 견뎌내고 개방화 시기를 맞은 현재의 중국영화. 그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서구인들을 매혹시킨 중국 5세대 영화의 매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모든 물음이 어렵지 않은 기사체의 문투로 빼곡이 담겨져 있다.
<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은 학술서가 아니라 중국영화에 관한 유용한 정보서로서 그 가치가 있다. 4,900원.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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