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줌인]녹화장 간접광고 "찍히면 붙인다"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55분


요즘 방송국 일일시트콤 녹화현장마다 색색깔 테이프가 ‘필수품’으로 등장했다.

용도는? 출연자들 옷의 상표를 가리기 위해서다. 녹화 직전 연기자들이 협찬사에 ‘증거자료’로 보내기 위해 협찬 의상을 입고 있는 사진을 찍고나면 PD는 곧바로 상표 위에 테이프를 붙여버린다.

KBS2 일일시트콤 ‘멋진 친구들’의 한 PD는 “모자이크 처리도 수없이 했지만 상표 하나 가리는 작업에만 30분씩 걸리는데다 어쩌다가 상표를 놓치기도 해 얼마전부터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일시트콤 뿐이 아니다. 의상 협찬을 받고 있는 스타들이 많이 등장하는 쇼, 오락프로그램에도 모자이크 화면이 수시로 뜬다.

비교적 ‘간접 광고’ 문제가 적었던 주말드라마도 마찬가지. MBC 주말극 ‘엄마야 누나야’는 주인공 옷의 상표부터 탁자 위의 소주병, 쇼핑백, 심지어 택시 문에 적힌 광고물까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동료 PD들조차 “요즘 화면은 정말 심하다” “(모자이크 하느라) 고생 좀 했겠더라”고 말할 정도다.

최근 간접광고에 대한 PD들의 ‘경각심’이 갑자기 높아진 이유는 뻔하다. 예전같으면 ‘주의’ ‘경고’에서 끝날 일이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MBC ‘세친구’)까지 가는 등 간접광고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제재 강도를 높였기 때문.

그러다보니 거리 장면을 찍고 나서 간판을 모자이크 처리할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드라마 PD는 “아예 평양가서 촬영을 해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쉰다.

물론 다들 할말이 있다. PD들은 ‘융통성 없는’ 방송위원회와, 테이프로 상표가 가려지더라도 협찬받은 옷을 고집하는 출연자를 원망한다. 연기자는 협찬 없이는 의상을 감당할 수 없다며 출연료를 탓한다. 코디네이터는 상표가 하나도 없는 옷을 매번 20벌씩 어떻게 구해오냐고 항변하고, 방송위원회는 방송의 공공성을 망각한 몰지각한 일부 PD와 업체간의 ‘검은 거래’를 의심한다.

그렇지만 가장 하고픈 말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시청자다.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에는 ‘모자이크 화면이 많아 짜증나서 못보겠다’ ‘의상 협찬은 배우 개인이나 방송사 내부사정인데 왜 시청자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시청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시선 거슬리는 모자이크나 테이프보다는 차라리 일주일 내내 옷 한 벌로 버티는 출연자를 택하지 않을까.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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