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불후의 명작>"남루한 현실에도 희망은 있다"

  • 입력 2000년 12월 14일 19시 02분


‘불후의 명작’은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로 가득찬 영화다. 서커스단과 바나나우유, ‘플란더스의 개’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그리고 함중아의 노래 ‘내게도 사랑이’. 한때 열병처럼 우리 마음을 훔쳤다가 은근슬쩍 자취를 감춰간 것들이 도처에서 뒹굴며 노래한다.

인기(박중훈)는 남녀 배우가 끊임없이 씨근덕거리는 촬영현장에서도 ‘불후의 명작’을 만들겠다는 꿈을 먹고사는 삼류 에로비디오 감독. 여경(송윤아)은 남의 자서전을 대필해주고 살지만 언젠가 꼭 자신의 글을 써보겠다는 그림자 작가다. 영화는 이 두 남녀가 불후의 명작이 될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면서 싹트는 교감을 극중극 형식으로 그린다.

마치 ‘미술관 옆 동물원’에처럼 영화와 현실이 자웅동체로 발전해가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은 그 시나리오의 해피엔드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여경이 선술집 환기통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채 술취한 목소리로 자신의 사랑을 독백하는 장면은 ‘그들도 우리처럼’에서의 심혜진의 연기를 떠올릴 만큼 아릿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동화속 세계에 대한 향수보다는 그 세계를 끊임없이 침윤하는 남루한 현실에 대한 코믹한 묘사에 있다. 에로비디오 제작자인 양사장(백윤식)이 ‘박하사탕’을 철저히 속물적 감각으로 패러디한 ‘박아사탕’의 스토리를 설명할 때나 인기가 실명으로 등장하는 신현준을 만나 ‘싸이렌’과 ‘리베라 메’를 혼돈하는 장면이 그 예다.

아쉬움은 바로 거기서 비롯한다. 그토록 비린내 가득한 현실 한복판에 살면서 정작 인기와 여경에게선 왜 비린내 한줌 맡을 수 없을까. 23일 개봉. 18세이상.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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