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인간복제를 화두 삼은 '복제 영화'<6번째 날>

  • 입력 2000년 12월 16일 15시 48분


"누군가 '나'를 복제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복제 인간의 화두는 현실 가능성 없는 극단적인 판타지였다. <멀티 플리시티>나 <너티 프로페서>처럼 복제 인간을 다룬 영화들이 있긴 했지만, 이 영화들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대신 유쾌한 웃음만 주었다.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변했다. 97년 복제 양 돌리가 탄생했고 2000년 드디어 인간의 DNA 지도가 해독됐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연한 <6번째 날>은 인간복제의 화두를 더 이상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을 만큼 과학이 많이 발전했다.

<6번째 날>은 인간의 몸뿐 아니라 기억(기억복제는 일명 '싱코딩' 작업이라 불린다)까지 완벽하게 복제되는 최첨단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미래 세계를 그린 영화가 흔히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람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최첨단 인형이 등장하는가 하면 죽은 애완 동물을 복제해주는 리펫(Repet) 사의 광고가 연일 TV 화면을 장식한다.

거울에 장착된 화면에선 그날의 톱 뉴스와 개인 스케줄이 일목요연하게 흐르고 인간의 엄지손가락은 신용카드 겸 다용도 출입증으로 사용된다.

헬리콥터가 주요 운송수단이 되고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낸 '허깨비' 여인이 애인 역할을 대신해주는 미래 사회. '살아남은 자의 슬픔'조차 느낄 수 없는 이 완벽한 미래 세계에서 '완벽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아담 깁슨(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은 미래 영화 속 주인공답지 않게 허름한 옷을 입고 구식 사고방식을 고수한다. 그는 애완 동물을 복제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복제 반대론자다. 그의 이름 '아담'은 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신이 만든 최초의 인간' 이름에서 따온 것.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신(神)은 첫째 날 빛을 만들고, 둘째 날 물을 나누고, 셋째 날 하늘과 땅을, 넷째 날 태양과 달을, 다섯째 날 수생동물을, 여섯번 째 날 육지동물과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편안히 쉬었다.

<6번째 날>의 주인공 '아담'은 여섯 번째 날 태어난 인간 즉 '신의 아들'을 연상시킨다. 반면 <6번째 날>에서 인간복제를 자행한 드러커(토니 골드윈) 일당은 신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곱 번째 날, 신에 대한 반란을 저지른 패륜아다.

영화 제목 '6번째 날'은 신이 세상을 지배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아담의 날'을 의미하는 것.

아담은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남자가 자기 집에서, 자기 대신 생일 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난 분명히 여기 있는데 저기 있는 나는 또 뭐지?" 그건 바로 '클론'이다. 누군가의 실수로 아직 죽지 않은 아담의 복제품이 생겨난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볼거리 위주의 미래 SF 영화에서 화려한 스펙터클 액션 영화로 분위기를 바꾼다. 아담은 자신의 복제품을 향해 총을 겨누고 불법복제를 자행하는 무리들의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장면들은 완전히 아놀드가 이전에 출연했던 <트루 라이즈>와 <터미네이터>의 합성품처럼 느껴진다. 헬리콥터 전투신은 <트루 라이즈>에서 따왔으며, 가족들을 향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곧 돌아 올 지도 몰라(I might be back)"는 <터미네이터 2>의 마지막 대사 "곧 돌아온다(I will be back)"에서 따왔다.

<6번째 날>은 인간복제를 다룬 영화답게 '복제'하는 덴 일가견이 있는 영화다. 아놀드가 출연한 전작들을 교묘히 차용하고(액션이나 SF 뿐 아니라 심지어는 <주니어>같은 코미디 영화까지 차용한다), 거기에 <에이리언>의 음산한 분위기, <블레이드 러너>의 인간 복제 아이템까지 아우른다. <6번째 날>에 등장하는 "사막의 바다거북이"는 <블레이드 러너>에도 똑같이 등장했던 대사다. 이건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직접적인 오마주.

복제의 수준은 매우 뛰어나지만 복제품은 결국 복제품일 수밖에 없듯, 이 영화는 정품(?) SF영화보다 뒷심이 많이 떨어진다. 특히 디스토피아적 미래관 대신 복제 찬양론적 해피엔드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하지만 인간복제라는 신선한 소재, 미래 세계에 관한 갖가지 볼거리, 철학적인 화두, 의미심장한 반전까지 갖추고 있는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재미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영화 속 그의 대사처럼 액션스타로 "다시 돌아왔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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