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황당무계한 얘기 같지만 최첨단의 디지털 미디어를 연구하는 동서양의 세 학자가 방한, 학술강연회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미디어 아트의 연구교육기관인 영국 카이아―스타(CaiiA―STAR)의 로이 애스코트 학장, 중국 런민(人民)대 장파(張法) 교수, 캐나다 퀘백대 사회커뮤니케이션학과 피에르 레비 교수가 그 주인공.
이들은 20일 ‘아트센터 나비’(전 워커힐 미술관·관장 노소영)’의 개관기념 국제학술강연회에 참석해 첨단 미디어 기술과 예술이 만나 이루어 내는 문화의 변화를 이렇게 전망했다. 전체 주제는 ‘새로운 예술의 태동과 미학적 과제’.
애스코트 학장은 ‘의식의 연결다리:21세기의 예술, 미디어 그리고 의식’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컴퓨터가 매개하는 건조한 디지털 시대를 넘어 포스트―디지털(post―digital) 시대를 전망했다.
그는 “정신의 발달이 항상 신체의 진화에 관여해 왔듯이 사이버 지각을 통해 확장된 정신은 이에 적합한 신체를 찾을 것”이라며 이것은 디지털과 유기체가 결합되는 ‘모이스트 미디어’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 예술이 물질주의의 연장선상을 걸어왔지만 예술이 정신적 산물임은 분명하다”면서 모이스트 미디어를 통해 정신적 문화적 열망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레비 교수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뉴로 랩(Neurope Lab)의 공동설립자이자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지식 정보의 소통 등과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물.
그는 ‘문화의 발전’이란 발표에서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인간의 감각 기관들이 점차 퇴화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네트워크화된 첨단 기술은 인간 지성의 확장을 가져올 뿐 아니라 새로운 감각기관을 진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지적 재산을 공유함에 따라 협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인류 공동의 지식을 완성해 가고, 법과 정부도 세계적 차원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의 대표적인 미학자 중 한 사람인 장파 교수는 ‘동서문화의 융합과 동아시아 예술’이란 발표를 통해 동서 문화는 비교와 상호교류를 통해 혼성모방과 혼합의 단계를 넘어 ‘융합’의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중국철학의 기(氣)는 디지털 정보의 흐름과 같다”며 “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디지털 정보의 흐름을 바라봄으로써 현상적 관점에서 다룰 수 없는 디지털의 심층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