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우시카' 문명이 망친 자연 누가 살릴까?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9시 32분


거대 산업문명이 붕괴하고 1000년후, 지구는 황폐해진다. 부해라고 불리는 유독가스를 내뿜는 균류가 계속 확장하면서 인간에게 신선한 공기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숲과 농경지는 자취를 감춰간다. 이 부해를 서식지로 하는 거대한 곤충 오무는 코끼리 떼처럼 쇄도하면서 도시건 마을이건 쑥대밭으로 바꿔버리는 공포의 존재다.

부해와 오무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채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서로 다른 꿈을 꾼다. 토르메키아 제국은 군소국가를 계속 통합해가면서 단 7일만에 세계종말을 가져온 전설의 생체병기 ‘거신병(巨神兵)’을 부활시켜 세계를 불태우는 방식으로 부해와 오무를 제거하려 한다. 바람계곡의 지도자인 나우시카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것이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 믿고 부해와 오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청정의 땅으로 인도할 구세주의 전설을 믿는 마을사람들은 나우시카를 따라 막강한 군사력의 토르메키아에 맞선다.

크샤나와 거신병은 서구 계몽주의 이래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남성적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면 나우시카와 토양과 물을 정화시키는 비밀을 지닌 부해는 여성적 에코페미니즘의 상징이다. ‘미래소년 코난’에서는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었지만 수동적 존재였던 여성(라나)이 이 영화에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존재로 그려진다. 이 영화의 흥행성공이 미야자키 아니메의 산실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을 낳았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의 모성적 성격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는 나우시카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메시아 신앙에 충실하지만 원작만화는 약속된 청정의 땅에서 살 수 없는 오염된 인간의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