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개봉되는 <자카르타>는 한국영화로선 이례적인 구성방식을 택한 영화다. 세 개의 범죄조직이 한 날 한시 같은 은행의 금고를 노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재방송 기법'으로 색다르게 풀어냈다.
<자카르타>의 연출을 맡은 정초신 감독은 이 영화로 데뷔전을 치르는 신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영화 매체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귀천도> <미스터 콘돔> <퇴마록> <엑스트라> 등의 프로듀서를 거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바 있다.
-데뷔작을 낸 감독의 심정이 남다를 것 같다.
"<자카르타>는 '완전범죄'의 꿈을 실현시킨 영화다. 난 인간이 절대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이 연금술, 만병통치약, 완전범죄 이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성취할 수 없는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건 '꿈의 공장'인 영화밖에 없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연기자나 스태프와의 호흡이 잘 맞아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다. <귀여운 여인>의 오프닝 신에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꿈이 있다면 할리우드로 오세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지금 내 심정이 이와 비슷하다. 꿈을 이루려고 충무로에 입성했고 드디어 데뷔작을 냈다. 여러분도 내 꿈에 동참해주길, <자카르타>를 보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영화의 구성방식이 독특하다.
"<자카르타>는 따지고 보면 50분 분량밖에 안 되는 이야기다. 재방송 기법이 사용되면서 90분 분량이 모두 채워졌다. 이런 구성방식을 택한 이유는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다. 반전이 시작되는 지점까지의 시간을 계산해보니 딱 40분이었다. 나머지 50분은 앞에 보여줬던 화면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난 이런 방식이 후반 뒷심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병폐가 후반부로 갈수록 맥이 풀리는 게 아닌가. 이를 탈피하기 위해 후반부에 더 힘이 붙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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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촬영횟수가 21회였다고 들었다. 왜 이렇게 영화를 빨리 찍었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도 총 촬영횟수가 23회밖에 되지 않았다. 빨리 찍었다고 대충 찍은 건 아니다. 96년에 이미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탈고했고, 영화제작에 들어가기 전까지 올 콘티를 네 번이나 그렸다. 이미 머릿속에 그림이 다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빨리 찍는 데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계산만 철저히 하면 가능한 일이다. 고충이 있었다면 배우들이 너무 바빠 촬영 스케줄 맞추기가 어려웠다는 것 정도다."
-왜 이렇게 많은 스타들을 불러모아 고생을 자처했나? <자카르타>는 스타를 캐스팅하지 않아도 될 만한 컨셉의 영화인데.
"맞다. 이 영화는 감독의 컨셉이 중요한 영화지 스타의 출연 여부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처음 이 영화를 기획했을 땐 6억 원 짜리 저 예산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단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블루(임창정)'만 스타를 기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스타를 기용하지 않으면 제작비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렇게 스타들을 대거 불러모으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엔 할리우드 인디 영화의 분위기가 많이 난다. 의도적인 것인가?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다. <자카르타>는 <펄프픽션>과 <유주얼 서스펙트>를 합쳐 놓은 듯한 내용에 <소나티네>의 비장미를 곁들여 만든 영화다."
-듣고 보니 이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관객과 일종의 두뇌 게임을 벌이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난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보다 '똑똑한 영화'를 좋아한다. <자카르타>가 '똑똑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반전이 일어나기 전 여러 가지 복선이 많이 깔려있는데, 그걸 눈치 챌 수 있는지 없는지가 재미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초반엔 누가 누구와 한 팀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영웅본색' 팀의 주무대인 '창고'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에 등장했던 창고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염두에 둔 설정인가?
"참고한 부분이 좀 있다. 처음엔 좀더 욕심을 내서 창고만큼은 그럴 듯하게 지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저수지의 개들>에 나오는 창고처럼 건조하게 가자"고 말했다."
-교차 편집의 유혹은 없었나? 반환점을 돌아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방식은 자칫 긴박감을 떨어뜨린다.
"그런 유혹은 없었다. '경찰청 사람들'처럼 '재현 화면'을 넣고 싶은 유혹은 있었다. 진짜 주인공은 무명 배우로 가고, '재현 화면'의 주인공들은 스타로 기용해서 의외의 재미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건상 그렇게 하긴 힘들었다. 어떤 스타가 재현 화면의 주인공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겠는가. 아직까지는 친분으로 밀어붙여 출연해달라고 매달릴 배우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이런 방식은 나중에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배우들을 같은 비중으로 등장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김세준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비중은 똑같았다. 계산하고 시나리오를 썼던 건 아닌데 나중에 보니 그렇게 됐다. 김상중 윤다훈 임창정 박준규 진희경 이재은의 대사 수와 신 수가 모두 똑 같다."
-스릴러 장르지만 코믹한 성향도 강한 것 같다.
"캐스팅한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무시할 수 없어 그렇게 됐다. 다음 영화는 정통 스릴러로 밀고 나갈 생각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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