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키리쿠와 마녀>,마녀는 왜 그렇게 못된 것일까

  • 입력 2000년 12월 28일 18시 55분


1990년대초 디즈니의 ‘환타지아’를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볼 때였다. 관객이 드문 좌석 한편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보이는 아들과 어머니가 나지막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어떻게 고래가 하늘을 날죠?” “잘 봐, 하늘빛깔과 바다빛깔이 같은 색이잖아. 음악에 취한 고래가 하늘과 바다를 착각하는 거란다.”

아들이 클래식음악을 상상의 나래로 펼쳐낸 장면들을 보며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지면, 어머니는 막힘없이 아들의 상상력을 다독이는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본 ‘환타지아’의 감동은 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황홀한 것이었다.

만일 자녀에게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고 싶은 어머니가 있다면 30일 개봉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Kirikou et la Sorcier)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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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키리쿠와 마녀>, 화면에 넘친 아프리카의 색감

아프리카의 전설을 토대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의 눈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생동감 가득한 이미지와 설화적 상징으로 가득하다.

마을 남자들을 모두 잡아먹은 무서운 마녀 카바라의 저주로 우물마저 말라붙은 아프리카의 한 마을. 키리쿠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말을 하고 스스로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다. 태어나자마자 "내 이름은 키리쿠"라고 자신의 이름을 짓는 그는 모자속에 몸을 감출 수 있을 만큼 땅꼬마지만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카바라의 저주를 풀어내는 영웅이 된다.

뱃속에서부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로고스(언어 이성)적 존재임을 드러내고, 이름을 지녔다는 것은 자아와 타자의 분별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키리쿠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마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 무지와 편견의 소산임을 밝혀낸다. 그 중에는 수많은 만화를 보면서 어린이들도 미처 던지지 못한 질문도 숨어있다. '마녀는 왜 그렇게 못된 것일까?' 그 질문 속엔 이미 그가 마녀의 저주를 풀어가는 방식에 상생의 묘가 숨어있음을 암시한다.

설화적 재미 못지않게 아프리카 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회화적 화폭 또한 매우 독창적이다. 초콜릿 빛깔의 피부로 대부분 반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뚜렷한 윤곽선을 통해 강렬하게 그려진 반면 배경그림은 몽환적이라할 만큼 신비로운 색채로 조화를 이뤄냈다. 아프리카출신 성우들의 불어 발음은 타악기 중심의 아프리카 토속음악에 착착 감겨든다는 표현이 적합할만큼 음악적이다.

98년 프랑스 개봉 당시 관객 160만명을 끌어들이며 디즈니의 '뮬라'과 드림웍스의 '이집트 왕자'를 침몰시켰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까지 거머쥔 미쉘 오슬로감독은 99년작 '프린스 앤 프린세스'에서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는 독창적 장르를 창조하며 유럽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전체 관람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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