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아내 얻기 힘들다"

  • 입력 2001년 1월 3일 15시 35분


올 겨울 극장가를 온기로 달구고 있는 멜로물 개봉행진에 새해벽두 가세하는 사랑 이야기다.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근무하고 있는 은행의 말단 행원과 보습(補習)학원의 강사를 전화걸 상대가 없다는 사실에 속앓이하는 `싱글'로 내세워 이들의 미세한 감정선을 좇는 코믹멜로물이다.

매일 출근해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일상에 부대끼는 은행원 봉수(설경구)는 남몰래 짝사랑을 키워가는 학원강사 원주(전도연)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 하며 길거리를 헤매던 봉수가 어느날 우연히 은행 CCTV녹화 화면을 되돌려보다 자신을 향하는 원주의 마음을 읽고 난후 오랜 방황을 끝내고 사랑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마음이 딴데 가있는 이웃집 총각, 그를 향해 혼자 애태우는 건넛집 처녀가 먼길을 돌고 돌아 사랑에 빠진다는, 별다를 것 없는 사소한 연애 성공기에 불과해 보인다.

이렇듯 평범한 연애담 같은 이 영화의 강점은 의외로 꽤나 오랜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비비 꼬아놓은 운명의 장난은 아예 발들여놓을 공간을 없앴다. 대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골인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뒤따라가며 그들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드러내 보여준다.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랑'에 특별한 의미와 느낌을 부여했다고나 할까.

깨끗하지 않은 과거를 지닌 남자와 일편단심인 여자를 손잡게 해 미래를 `약속'케 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따뜻함에 주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철저히 `사랑'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과 대비된다. 행복의 토대라고 인간들이 믿고 있는 사랑의 천박함, 더 값비싸 보이는 짝을 `쟁취'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셈법 사랑'을 비웃고 있는 「오! 수정」의 정반대편에서 따뜻한 눈길로 인간미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잔재미도 빼놓지 않고 곁들여놨다. "재미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박 감독의 영화관을 보여주듯 코믹한 대화가 중간 중간 녹아 있어 수시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중반을 치달으면서 추력을 잃은 듯 다소 비틀거리는가 하면 따분한 두 남녀의 일상을 되풀이해서 보여줌으로써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약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해피엔드」에서 욕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을 농염하게 연기해낸 전도연과 「박하사탕」「단적비연수」로 지난해 최고의 남자배우로 성장한 설경구의 연기변신이 눈에 띈다. 제작 싸이더스 우노필름. 13일 개봉.

[연합뉴스=이명조 기자] mingjo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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