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왓 위민 원트>여자가 원하는 건 더 많다

  • 입력 2001년 1월 4일 17시 18분


"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What Women Want?)"

만일 <왓 위민 원트>가 그 해답을 모두 알려줬다면 남자들만 좋을 뻔했다. 전략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감질나게 보여주다 만다. "남자들이 세상을 다 가지게 될까봐" 겁을 냈던 게 분명하다.

<아이 러브 트러블> <신부의 아버지>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먼길을 우회한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열변을 토해내듯 그녀들의 심정고백을 듣는 게 아니라, 남자를 주인공으로 여성들의 심리변화를 차츰 알아가게 만든다.

원치 않았는데 얼떨결에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 남자는 속물 근성이 몸에 배어있는 광고 기획자 닉 마샬(멜 깁슨).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한 그는 처음 너무나도 괴로워한다. 여자들이 하나 같이 자신을 "속물 덩어리"라고 욕하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겉으론 온갖 입에 발린 소리로 닉을 칭찬했지만 그녀들의 속마음은 겉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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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속마음을 아는 건 심히 괴로운 일이었지만 정신과 상담의사가 "왜 그렇게 괴로워해요? 그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 될지도 모르는데"라고 알려준 후 마음을 바꿨다. 그때부터 그는 이 '요상한' 재능을 쓸데없이 과용한다. 때마침 남성용품 광고를 제작하던 그는 여성용품 광고 기획자로 거듭나야 할 상황에 처한다. 능력 있는 여성 달시(헬렌 헌트)를 상사로 모시게 된 닉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유능한 광고 기획자이자 여자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근사한 남자로 변신한다.

달시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은 물론 그녀의 마음까지 훔쳐낸 닉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행운아"가 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이 아닌 남의 걸 훔친 도둑질일 뿐이다. 처음엔 짓궂은 장난처럼 자신의 요상한 재능을 즐겼던 그가 개과천선해가는 과정은 아주 달콤하다. 그는 정말로 여성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재능 없이도 여자가 원하는 걸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남자가 된다.

영화 속에서 닉과 달시가 만들어낸 나이키 여성용 광고처럼 <왓 위민 원트>는 여성의 구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다(이 광고는 영화보다 훨씬 잘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광고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여성들이 영화 속에서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나열한 영화라고 하면 지나칠까. 능력 있는 여자, 여자 맘을 잘 아는 남자가 만들어내는 로맨스, 멜 깁슨이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을 틀어놓고 진 켈리나 프레드 아스테어처럼 추는 춤까지. 철저히 상업적인 계산법으로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포만감 있게 풀어놓는 이 영화는,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렇게 속 시원히 여성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진 못한다. 영화 속 광고 멘트처럼 영화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망각한 때문이다. '지나친 계산'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금세 앗아간다.

다만 나이 오십에 멜 깁슨이 선보인 변신은 자칫 건조해질 뻔한 영화에 생기를 더했다. 총칼 들고 설쳤던 과거의 멜 깁슨이 아니라 여자 마음을 이해하는 달콤한 남자로 변신한 현재의 멜 깁슨. 낸시 마이어스는 몰라도 최소한 그는 여자들이 지금 자신에게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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