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매:춘향아! 수청을 들어선 안된다. 차라리 같이 죽자. 죽을지언정 우리 모녀는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춘향:그깟 정조가 뭔데 목숨을 버려요? 저는 청사에 빛나는 것도, 열녀문 받는 것도 싫어요. 변학도의 사랑을 받아 호강하며 살고 싶어요.
SBS 새 수목드라마 <순자>의 촬영 현장인 민속촌을 찾았을 때, 춘향으로 분한 이지현(23)은 얇은 한복 차림이었다. 한낮에도 영하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 그는 2시간째 긴 칼을 쓰고 앉아있었다.
10일 첫 방영될 <순자>(밤 10시)는 가난한 순댓국집 딸 순자가 스타로 성공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연예계의 명암을 조명한 드라마다.
이날 촬영한 내용은 왕년의 톱스타 ‘황승리’(정애리)와 가정부인 <순자>(이지현)가 각각 월매와 춘향역을 맡은 장면을 상상하는 씬. ‘수청을 들더라도 호강하겠다’는 춘향의 대사는 스타가 되기 위해 애인도 배신하고 재벌 2세인 화가와 동거하는 <순자>의 앞날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 자신 역시 스타로 발돋움하려는 신인으로서 <순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성공을 하고 싶다’는 순자의 일념에는 공감이 가요. 극중 순자가 겪게될 일을 보면서 톱스타들은 이렇게 성공했구나, 이런 일도 당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정애리가 “이건 드라마일 뿐이야”라고 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 드라마가 연예계의 현실과 얼만큼 비슷한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순자가 자신의 뒤를 봐줄 ‘스폰서’인 민혁주(정보석)와 동거하는 내용이나 순자의 남자친구인 정윤수(정찬)가 연예계의 숨은 실력자인 거물 패션디자이너와 동성애 관계를 맺고 톱모델이 되는 부분은 ‘실제 모델이 누구냐’에 대한 말초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화 <미인>에 이어 <순자>에서도 누드모델로 나온다는데.
“자꾸 그런 쪽(야한 이미지)으로만 인식될까봐 걱정이에요. 나중에 청순한 배역을 맡을 때 걸림돌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대사가 국어책을 읽는 것 같다는 평이 많았는데.
"솔직히 저, 연기 못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연기 지도도 받고 있고 매일 신문을 소리내서 읽으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순자>를 통해서 연기도 배우고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코믹과 멜로가 뒤섞인 <순자>에서 정애리는 한물간 여배우의 ‘공주병 연기’를 보여줄 예정. 이밖에 윤여정, 양택조 등 중견 탤런트들이 탄탄한 연기로 드라마를 받쳐준다. 당초 제작진이 생각했던 제목은 <무엇이 순자를 뜨게 했는가>. <순자>를 기획한 구본근 CP는 “최악의 경우 드라마는 망해도 이지현은 뜰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이지현을 뜨게 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용인〓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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