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울산과학대 화공과로 입학했다가 일문과와 법대로 전공을 계속 옮겨다니다 어릴 적 꿈인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각오로 대입시험까지 다시 보고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처지였다. 한동안 안하겠다고 버텼는데 김교수와 함께 오셨던 정일성 촬영감독이 “이 좋은 기회를 왜 놓치냐”고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생각도 않던 연기자 인생을 걷게됐다.
‘바람부는…’은 김교수님이 연극무대에 올렸던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내 배역은 유명배우를 꿈꾸는 젊은 연기지망생이었다. 유인촌 이혜영 김지숙 박정자 박웅 선배 등은 물론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등 당시 내로라하는 연극, 영화계 인사들이 총동원되다시피한 이 작품에서 신인으론 유일했던 내가 주연급 배역을 맡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얼떨떨한 일이다. 어쨌든 88년 이 영화가 개봉된 뒤 나에 대한 반응이 좋아 <청춘시대> 등 잇달아 3편의 영화 주연을 맡았다.
영화 몇편 출연했다 해도 엄두도 내기 힘들었던 TV출연의 인연을 맺어준 것도 학교연극무대였다. 89년 졸업한 뒤 학교연극을 보러갔다가 우연히 운군일PD를 만나 KBS 일일드라마 <세노야>에서 김혜수의 상대역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고려대 태권도부장이었던 운PD는 집으로 나를 불러 ‘연기자는 몸이 중요하다’며 내게 무술을 배웠냐고 물었다. 절권도를 배웠다고 했더니 한판 대련을 펼친 뒤 자장면을 사주며 배역을 맡겼던 일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뒤 너무 고마워 선물을 하나 했다가 혼이 나면서 운PD에게 들었던 얘기, “젊은이로서 야망을 가질지언정 야심을 가지진 말라”는 말은 후배들에게도 두고두고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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