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져도 태산같은 무게를 잃지 않던 깊은 눈빛의 막시무스 장군은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질 협상 전문가로 환생했다. 러셀 크로에게 열광하는 여성 관객들을 위한 ‘팬 서비스’같은 영화. 그렇지 않다면 꽤 긴 상영시간(2시간반)이 더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가상국가 테칼라. 댐공사를 진행하는 미국 기업의 총감독 피터(데이비드 모스)가 반정부군에게 납치된다. 납치범들은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지만 피터의 회사는 납치 대비 보험을 철회한 상태다. 인질협상 전문가 테리(러셀 크로)는 보험 철회 사실을 알고 떠나지만,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한 피터의 아내 앨리스(멕 라이언)의 딱한 처지를 두고 볼 수 없어 다시 돌아온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데블스 애드버킷’의 감독 테일러 핵포드와 시나리오작가 토니 길로이 콤비는 한 잡지에 실린 기사 ‘인질의 몸값 협상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영화 중반까지 인질 협상 과정의 세세한 묘사와 정글에서 피터가 겪는 모진 고초는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또 에콰도르에서 촬영한 남미의 웅장한 자연, 촬영기술과 편집, 매력적인 배우의 캐스팅도 모두 준수하다. 테리가 람보처럼 인질을 구출하는 마지막 액션 장면도 잘 연출됐다. 그런데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 남는 이유는 중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각본 때문.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앨리스가 그다지 사이가 좋지않은 남편의 납치에 애를 태우다가도 테리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런 앨리스의 죄책감과 감정적 혼란이 보는 이에게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피터와 앨리스, 테리의 관계가 영화의 핵심인데도 곧잘 등장하는 앨리스 시누이의 에피소드는 이야기 전개를 자주 가로막는다.
이 때문에 영화 후반부, 앨리스와 테리의 애절한 사랑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느닷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지옥에 다녀오고도 멋있게 돌아서는 러셀 크로의 이미지에 매료된 여성 팬이라면 느닷없는 결말이 무슨 상관이랴. 러셀 크로와 멕 라이언이 촬영도중 실제 연인사이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영화. 제목은 인질 협상과정에서 ‘인질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가리키는 말. 20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