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80년대 대처정부의 구조개혁과 직결되어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시장경제론자들이 영국을 살려냈다고 극찬해 마지않는 대처리즘의 긍정적 작용이 아닌 부작용의 결과다.
‘트레인 스포팅’, ‘브레스트 오프’, ‘풀 몬티’ 그리고 ‘빌리 엘리오트’까지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영국 영화들은 바로 그 대처리즘이 인간성에 가한 폭력에서 출발한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예술은 패배자의 회고록일 때 더 아름다운 것은 만고의 진리인가 보다.
1984년 대처정부의 광산 구조조정의 여파로 탄광노동조합의 파업시위가 한창이던 영국 부부의 탄광촌. 빌리 엘리어트는 파업에 참여중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치매증세가 있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11세 소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수입마저 끊긴 빌리 집안은 안주인을 잃은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삐그덕거린다. 그나마 아버지가 빌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막내아들을 남자답게 키워줄 권투교습비를 대는 일이다. 하지만 빌리는 엉뚱하게도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에 폭 빠지고만다. 권투체육관 한귀퉁이를 빌려서 진행된 발레수업에 매료돼 글러브를 벗고 발레슈즈를 신기 시작한 것.
근육은 육체노동이나 권투같은 거친 운동에나 쓰는 것으로 믿는 아버지와 형에게 그런 막내의 모습은 집안의 수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더욱 팽배해지고 아버지와 형은 빌리의 발레수업을 강제로 막아선다. 빌리는 그런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춤에 대한 열망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마치 ‘백야’에서 미하일 바르시니코프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춤에 담아내듯.
아버지는 평생 발레구경이라곤 해 본 적도 없는 예술의 문외한이지만 그런 아들의 진실한 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평생을 지켜온 사나이로서 자존심마저 꺽는다.
빌리 엘리어트 역의 제이미 벨은 남자아이로선 드물게 6세부터 무용을 시작한 덕분에 2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주연을 따냈다. 그의 연기에는 영화속 빌리처럼 학교친구들의 놀림을 받기 싫어 몰래 발레수업을 받은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론가들은 빌리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를 발레로 인도하는 발레여교사 윌킨슨역의 줄리 월터스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끌어내는 것은 아버지역의 게리 루이스다.
탄광촌 좁은 골목을 내려가는 그의 투박한 어깨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회적으로 거세되는 것에 대한 좌절과 이해불가능한 아들의 열망에 대한 혼돈속에서도 꿋꿋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이 시대 아버지의 뒷 모습이 담겨있다.
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더스처럼 런던의 연극연출가출신으로 이 작품을 통해 장편영화 감독에 데뷔했다. 모든 연령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