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음악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았고 이 영화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빔 베더스 감독도, 프로듀서인 라이 쿠더도, 영화 속 그들도 모두 일말의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한껏 욕심을 내도 만들지 못할 만한 역작이 되어버렸다. 그건 바로 마음을 비운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롭고, 비어있고,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음악 영화다. 그 중에서도 인기 있는 팝 음악이 아니라 제3세계의, 버려진 쿠바 음악에 관한 영화다. 또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디지털 영화다. 비주류의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는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류의 감성에 포근히 겹쳐진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꿈을 잃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의 석세스 스토리(Success Story)이자 숨겨진 것을 발굴해내는 보물찾기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담은, 누군가가 찾아낸 보물에 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감동적이다. 물론 영화 속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음악이 좋아 음악에 묻혀 살았던, 그러나 지금은 구두닦이나 발레학원의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는 전직 쿠바 음악가들이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로맨틱한 감성을 잃지 않은 꼼바이 세군도(1907년 생), 라이 쿠더가 "내 평생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격찬했던 루벤 곤살레스(1919년 생), 한때 '쿠바의 냇 킹 콜'로 이름을 날렸지만 오랫동안 구두닦이로 살아온 이브라힘 페러(1927년 생),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유일한 여성 보컬인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 생) 등. 이들은 영화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연주를 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해 푸석푸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멋지게 보이려는 욕심도 없다.
자신의 장수 비결은 "닭 모가지 수프로 숙취를 해결하기 때문"이라는 둥 "내가 지금 아흔 살인데 여섯 째를 나으려는 중"이라는 둥 실컷 농담을 해댄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마디마디엔 분명 일침이 있다.
"소유에 집착했다면 우린 벌써 오래 전에 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죠. 쿠바 인들은 정말 행운아예요"같은 이야기들이 연신 가슴을 파고든다.
쿠바를 사랑하면서도 뉴욕의 거대함에 아이처럼 순진하게 반응하고 마릴린 먼로 인형을 가리키며 "저 여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그들. 영화를 보는 순간 우리가 알던 쿠바가 쿠바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쿠바엔 혁명가 체 게바라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잡아낸 쿠바의 정경은 원색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있다. 푸른 하늘과 무너진 담벼락, 쿠바 사람들의 옷 색깔이 제조해내는 이상야릇한 영상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거기에 쿠바 음악을 발굴한 전설의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가인 라이 쿠더의 한 마디가 감동의 쐐기를 박는다.
"난 이미 오래 전에 쿠바음악에 매료되었지만 20년 동안이나 그들이 누군지, 살아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의 음악을 들어왔던 겁니다."
라이 쿠더와 빔 벤더스에 의해 '발견된' 그들은 쿠바의 도시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우리에겐 꿈이 있다"는 낙서처럼 아직 꿈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앞둔 나이에 카네기 홀 공연을 할 수 있었고 끝내 이루지 못한 한을 풀었다.
빔 벤더스의 카메라는 쿠바 음악가들이 지금은 없어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부지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카네기 홀 공연을 하는 모습까지 욕심 내지 않고 보여준다. 이건 솔직히 휴머니즘 영화의 대가 스티븐 스필버그도 감히 엄두 내지 못했을 시도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 "디지털 영화의 영상은 곱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열정이 사라진다"는 편견을 모두 깨뜨려버린 일종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다. 그래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결국 전세계 쿠바음악 열풍에 일조했고 그들의 꿈을 공유했다. 이들의 음악은 2월5일 서울 LG 아트홀에서도 직접 들을 수 있다. 영화 개봉은 2월10일.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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