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을 정면에서 응시할 때 생기기 쉬운 지루함 따윈 없다. '오스카맨'들은 역시 이 지독한 시간과의 전쟁을 쉽게 이겨냈다. <포레스트 검프>(94)로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지루한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뒤바꿔놓는 법을 알았고 <필라델피아>(93) <포레스트 검프>(94)로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는 혼자서도 스크린을 꽉 채우는 법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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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확실한 저만의 원맨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별로 잘생기지도 않는 톰 행크스가 원맨쇼를 보여주겠다며 혼자 설쳐도 그게 그렇게 미워 보이지 않는다. 기계로 찍어낸 듯한 시나리오가 좀 징그럽긴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든 아카데미용 영화라는 게 흔히 그렇지 않은가. 그들의 영화엔 형식보다 이야기가 먼저다. 드라마틱한 감동과 약간의 무게 있는 교훈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바로 그런 경우다.
"시간과의 전쟁이야! 1분 1초도 낭비할 생각하지 말아!" 직원들 앞에서 자신만의 시간론(時間論)을 멋지게 설파했던 척 놀랜드는 무인도에 표류된 뒤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운다. 척 놀랜드가 정착한 무인도에선 현실의 시간이 철저히 무시되고 과거, 현재, 미래가 집약된 채 '뭉텅이'로 그의 앞에 다가온다.
사고 전 아내 캘리(헨렌 헌트)가 그에게 건네준 회중시계는 완벽한 과거(그리움)의 표상이며 페덱스 포장지에 싸여 떠내려온 배구공 '윌슨'은 대화에 목마른 그의 가장 중요한 현실 돌파구(사랑)가 된다. 미래에 관한 희망의 표상은 언젠가 주인 손에 건네주어야 할 소포 한 꾸러미. 척은 무인도라는 이 원시 공간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간다.
물류 항공기와 함께 추락된 탓에 척이 살고 있는 무인도엔 페덱스 포장지에 싸인 소포들이 가끔 파도에 밀려 떠내려온다. 이때 척은 이 물건들을 아주 기발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스케이트 날은 코코넛을 자르는 칼로, 망사 치마는 어망(漁網)으로, 배구공은 지루함을 이겨낼 척의 훌륭한 말벗으로 변형된다.
영화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척 놀랜드의 무인도 생활은 일견 '인류의 진화'를 떠오르게 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하빌리스로, 다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해 간 인류의 진화 과정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구를 만들고 불을 창조해 내는 척의 모습. 척은 그러나 '과거에 집어삼켜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살았던 진화된 미래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스스로 배를 만들어 위험한 항해를 시도하는 남자. 이건 분명 위대한 인간의 도전정신이다.
이때 <캐스트 어웨이>에서 가장 슬픈 사건이 벌어진다. 4년간 동고동락했던 윌슨과의 이별. 살아있는 생명체도 아닌 윌슨과의 이별이 그렇게 가슴을 저미게 할 수가 없다. 참고로 '윌슨'의 이름은 톰 행크스의 실제 부인인 리타 윌슨의 라스트 네임을 따서 지어진 것.
이렇듯 험난한 과정 끝에 고향에 돌아온 그에겐 그러나 <오딧세이>의 신화가 없다.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시간과의 전쟁은 모두 의미없는 안간힘일 뿐임을 알게 된다.
척의 표현을 빌리면 "산다는 것은 그저 숨을 계속 쉬는 것"과 다름 아닌 것. 영화의 마지막, 네 거리에 멈춰 선 척이 어디를 향해 나아갔 건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험한 세상에 '던져진' 미약한 존재일 뿐이니까.
여기서 영화는 다시 한 번 미래에 관한 희망의 카드를 들이민다. 4년간 주인 손에 전달되지 못했던 소포를 들고 '장인정신'을 실천하는 척 놀랜드. 이 마지막 신과 함께 내레이션이 흐른다. "세상의 끝에서 그의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결국 또 '교훈주의'의 망령에 빠지고 마는 할리우드 영화의 한계에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하지만 그게 또한 할리우드 영화의 묘미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캐스트 어웨이>는 범작과 졸작의 경계선에서 안타깝게 멈춘, 딱 '오스카용' 영화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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