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멜로영화와 달리 <생일선물>의 남녀는 절대 고상하지 않다. 24세 결혼 적령기인 여자 아키코(와쿠이 에미)는 신분상승의 욕구를 미화시키지 않으며 여태껏 총 34명의 남자와 잤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댄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마사요시 쇼키치(키시타니 고로)는 "여자들이 예술가에게 쉽게 빠져든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마치 전도유망한 화가인 것처럼 꾸민다. 한마디로 그들은 답이 안 나오는 속물근성의 남녀다.
속물근성이 지독하기에 그들은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문' 엄청난 해프닝을 만들어나간다. 처음 그들이 만나게 된 장소는 프랑스 파리. 여행사 직원인 쇼키치가 몽마르트 화가의 부탁으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사이 스튜어디스 자격으로 파리에 온 아키코가 그 길을 지나간다. 진부한 수작을 부리기 시작한 쇼키치는 결국 그녀와 대화하는 데 성공하고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마침 그녀는 '완벽한 신랑감'인 줄 알았던 남자에게 실연을 당한 참이었고 실연당한 날이 바로 자신의 생일이었다는 데 절망해 있다. 그녀는 매년 생일날마다 불행한 사건을 겪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엄연히 일본에 살고 있지만 아키코에겐 파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쇼키치는 그녀를 도쿄로 떠나보내며 "내년 생일에도 선물 줄 사람이 없다면 제가 당신에게 근사한 선물을 드리겠다"고 말한다. 그 말이 곧 현실이 될 것임은 영화를 끝까지 안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답이 뻔한 이 영화는 다시 무대를 도쿄로 옮겨온다. 여행사 직원과 스튜어디스의 주무대는 공항. 두 사람은 공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이 깊어 가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면을 벗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아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쇼키치는 도쿄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 말을 믿은 그녀는 성공한 쇼치키를 통해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겠다는 몽상에 빠진다.
솔직히 이런 설정은 영화 속에선 엄청난 거짓말일지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 속에선 별 특별한 거짓말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앞두고 '사랑'보다 '조건'을 먼저 따지려 드나. 물론 <생일선물>은 그 거짓말의 강도를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관객들을 자주 황당함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95년에 제작된 영화여서인지 '촌티'도 만만치 않다. 6년의 시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은 주인공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옷뿐이 아니다. 공들이지 않는 영상, 다분히 트랜디 드라마적인 뻔한 스토리와 구성이 영화의 촌스러움을 더한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일본 개봉 당시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아무래도 일본 관객들은 <러브레터>의 고상함보단 <생일선물>의 유치함이 더 마음에 와 닿았나 보다.
연출은 국내에서도 리메이크 된 바 있는 <101번째 프로포즈>의 프로듀서 출신 미츠노 미치오가 맡았으며 쇼키치 역은 <달은 어디에 떠 있나> <개, 달리다>에서 주연을 맡았던 키시타니 고로가 맡아 열연했다. 2월10일 개봉.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