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덧없는 미혹(迷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번지점프를 하다’(3일 개봉)를 보다 보면, 평생 단 한 번 찾아오는 운명적 사랑을 믿고 싶어진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사랑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판타지 멜로영화다. 이 영화로 데뷔한 김대승 감독은 환생을 소재로 삼아, ‘몇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진정한 사랑은 결국 하나 뿐’이라는 순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제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정통 멜로영화 또는 요즘 유행하는 ‘일상의 멜로’와는 궤가 다른 참신한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1983년 여름. 국문학과 82학번인 인우(이병헌)의 우산 안으로 태희(이은주)가 뛰어들어오면서부터 이들의 운명적 사랑이 시작된다. 인우는 이전까지 “첫눈에 반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라고 생각해왔지만, 태희에게로 이끌리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다. 입영열차를 기다리는 인우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속 시간은 17년을 훌쩍 건너뛰고, 태희와 맺어지지 못한 채 다른 여자와 결혼한 뒤 고교 교사가 된 인우의 모습이 보여진다. 성실한 교사인 인우는 제자인 현빈(여현수)에게서 태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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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지배하는 두 줄기의 정서는 노스탤지어와 판타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반부를 지배하는 정서는 정감어린 노스탤지어다. 어리숙하고 착한 인우가 첫사랑에 수줍어하고 쭈삣거리는 행동은 이병헌의 호연에 힘입어 만져질 듯 생동감있게 재현됐다. 또 현재를 무대로 한 후반부에서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환생이라는 소재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된다.
사실 이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 장치인 환생은 대사와 현빈의 태도로 인해 중반 이후부터 예측가능하다. 보는 이를 깜짝 놀래키는 반전보다는 인우가 자신의 운명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과정의 개연성을 위해 제법 짜임새 있게 배치된 장치들이 이 영화의 묘미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출연배우들의 열성이 스민 연기 덕택에 무리없이 볼만한 영화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영화 속에서 인우가 현빈을 대하는 자신의 감정에 황망해하는 순간, 관객은 애절함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야 할텐데 인우를 따라 똑같이 당황스러워지니 문제다.
또 인우가 현빈의 모습에서 태희를 발견하는 첫 모티브가 너무 약해 느닷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과거와 현재의 톤이 너무 다른 것도 보는 이의 집중을 방해한다. 15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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