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 '여로'의 영구 장욱제 만나다

  • 입력 2001년 2월 6일 18시 45분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52)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중인 ‘여로’의 ‘영구’ 장욱제(60). 요즘 TV와 무대를 통해 시청자와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화제의 주인공들이다.

이환경이 5일 눈물없이 볼 수 없다는 ‘여로’의 공연장을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색시야∼.”

어느새 여기저기서 훌쩍 훌쩍 눈물닦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영구랑 분이가 만나네.”

관객들의 박수와 눈물을 뒤로 한 채 분장실로 간 이환경을 맞는 첫 손님은 극중 표독한 영구 계모역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던’ 박주아였다.

박주아가 먼저 말을 건넨다. “어, 웬일이야.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더니 요즘 내가 그 꼴이야. 목소리가 잠겼어.”

이에 이환경은 “궁예 장모님. 아니 누님, 좋았습니다. 역시 못된 시어머니는 박주아가 최곱니다”라고 답한다. 박주아는 장욱제의 분장실이 복잡하니 자기 방을 빌려준단다.

이환경〓70년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입니다. 그 시절 TV와 30년이란 시대의 공백을 무대로 한꺼번에 채우는 느낌입니다.

장욱제〓관객이 어떻게 생각할까 항상 걱정인데. 옛날 ‘여로’의 90%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영구가 고무신을 뒤로 확 벗으면서 방안으로 들어가는 게 화제였는데.

이〓‘여로’를 관람하면서 객석에 있는 어르신들 표정 꼼꼼하게 챙겨 봤어요. 웃다 울다 너무 행복해 하시더라구요.

장〓배우나 관객이나 이 작품은 언제나 추억 속에 있죠. 안 그러겠어요. KBS의 연말 특집 때면 영구와 분이가 만나는 ‘찾았다’ 장면을 20년간이나 방송했는데. 방송 테이프가 귀한 시절 한 테이프에 계속 촬영하는 바람에 그 마지막 회밖에 없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여로’의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으셨던 작가 이남섭 선생을 제가 30대 초반 ‘어릴 때’ 만났습니다.

장〓정말 대단한 분이었요. 68년부터 72년까지 그 분 드라마는 무조건 ‘대박’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하고만 작품을 하다시피했어요.

이〓지금 방송사에는 ‘여로’같은 시대극이 없습니다. 그걸 쓸 수 있는 작가도 드물어요. 젊은 작가는 옛날을 모르고, 옛날 작가는 요즘 감각을 모르고.

장〓그게 세월이죠.

이〓거의 30년만에 연극 ‘여로’를 하시는 데 느낌이 어떻습니까.

장〓가장 큰 고민은 20대의 젊은 분이(김혜영)와 연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턱없이 늙어 보이면 주책이 되거든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 그걸로 성공입니다.

이〓저도 ‘여로’의 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TV 화면이 아니라 무대로 펼쳐진 공연으로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장〓그런데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정말 그 어려운 사극의 글은 어디서 나오나요.

이〓(웃음) 작가가 대 히트 치면 꼭 병이 생깁니다.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부담 때문이지요.

장〓거, 배우랑 똑같네.

이〓‘용의 눈물’ 다음 ‘태조 왕건’을 쓰려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어지더라구요. 허, 또 어떻게 쓰나. 그래서 ‘글반 술반’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며칠 뒤 가슴에 풍선을 넣는 치료를 받으랍니다. 뭔지 잘 모르겠어요. 잘 아시겠지만 큰 성공 뒤에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오게 마련입니다. ‘여로’ 끝나면 계획은.

장〓다시 장사꾼(주류 유통업)으로 돌아가야죠. 혹 이선생이 나한테 맞는 드라마에 불러 준다면 몰라도(웃음). 배우는 자기를 아는 작가와 연출자를 만나야 합니다.

공연은 11일까지 오후 3시, 7시반. 2만∼5만원. 02―3675―0959

■뒤풀이 뒷얘기…"젊은 연기자에겐 박주아 호통이 藥"

세종문화회관 옆 설렁탕 집. 밤 공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욱제 등 배우들은 빠지고 나머지 제작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가 이환경과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극단 ‘세령’의 황지수 대표 등 일행 6명은 딱 한병만 하기로 했다.

“태현실씨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귀순 여배우 김혜영도 잘 하대요.”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이환경은 “젊은 연기자에게는 박주아씨가 ‘약’”이라고 말했다. 대사 외우다 헤매고, 연기가 안되면 아무리 인기있어도 그 배우는 박주아에게 혼쭐이 난다는 것. ‘태조 왕건’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단다.

다시 누군가의 말.

“궁예가 아쉽죠. 정치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얘기가 무르익으면서 소주병 숫자가 늘어난다.

“딱 세 병만 하죠.”

그러나 결국 일행이 일어설 때 ‘참이슬’ 빈병은 7개나 서 있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