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처리 미숙과 잦은 패스 미스, 공간 활용 전술의 부족, 학맥 위주의 선수 및 감독 선발, 잔디구장 등 인프라의 미비….
11일 방영되는 KBS1 일요스페셜 ‘히딩크의 한국 축구, 무엇을 해야하나’(밤 8시)는 한국 축구의 치료방안과 47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을 점검한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방법을 택했다.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위해 3차원 컴퓨터 게임을 도입한 것. 먼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지난 1년간 한국 국가대표 경기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 문제 장면들을 골라냈다. 그리고 이 장면을 3차원 컴퓨터 축구게임인 ‘FIFA 2001’의 화면에 재현시키는 한편 올바른 전술을 입체적 시뮬레이션 화면으로 보여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위해 제작진은 프로게이머 8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 작업을 통해 제작진이 도달한 결론은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단기간에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감독에게 맡기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연봉 100만달러로 주고 영입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히딩크가 입국한 1월초부터 울산에서 펼쳐진 전지훈련과 홍콩 칼스버그컵 대회에서의 히딩크의 작전 등을 샅샅이 추적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감독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체력훈련을 생략했다. 운동장 몇바퀴 돌기 같은 의례적 훈련도 철저히 배제한 채 공을 갖고 노는 전술훈련에만 몰입시켰다. 축구는 즐겨야 잘 할 수 있다는 원칙때문이다.
그는 또 전용 비디오분석가를 고용,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은 뒤 이를 컴퓨터에 데이터베이스화했다. 그래서 그의 노트북에 특정 선수의 이름만 입력하면 그 선수의 장 단점이 문자가 아닌 동영상으로 펼쳐지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도할 때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선수 본인의 눈으로 장 단점을 확인하도록 한 것. 제작진이 도입한 3차원 시뮬레이션과 비슷한 시도였다.
제작진은 히딩크가 운동장에서 휴대용 녹음기를 이용해 그때 그때의 분석내용을 몰래 녹음하는 장면도 카메라에 포착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선수들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선수들의 장 단점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하는 것을 철저히 자제하고 있다.
히딩크감독이 선수들에 요구하는 것은 ‘머리를 써라’ ‘집중력을 키워라’ ‘축구의 기본은 패스다’ 등 세가지.
선수들 역시 인터뷰에서 “이전의 전술훈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며 놀라움과 신뢰감을 나타냈다.
연출을 맡은 서현철PD는 “히딩크에게서 진정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축구기술이 아니라 축구문화이고 축구철학이다”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