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사람이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그 일을 실천한 꼬마가 있다. '피라미드 전략'을 연상시키는 이른바 '사랑 나누기(Pay it Forward)' 운동. 내가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내 도움을 받은 세 사람이 각자 세 명의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또 그 사람들이 다른 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렇게 사랑을 늘려나가면 세상이 아름다워지지 않겠냐고, 꼬마 트레버 맥킨니(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쉽게 생각한다. 물론 사랑 나누기 운동에 대한 확신이 아주 강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선행을 베푼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초장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퇴로를 찾아 방황하진 않는다. 꼬마는 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랑 나누기' 운동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묵묵히 사랑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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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트레버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 미미 레더 감독도, 주연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 헬렌 헌트, 할리 조엘 오스먼트도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영화에 참여했을 게 분명하다. 케빈 스페이시는 사회 선생님답게 열심히 세상에 대한 화두를 강변하고 헬렌 헌트는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하층민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가 미국, 더 나아가서 전세계에 '사랑 나누기' 붐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길 바랬던 것 같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미미 레더 감독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었을 뿐 그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미뤄두었다. <피스 메이커> <딥 임팩트> 등을 연출했던 미미 레더 감독의 세계관은 다분히 결정론적이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끝까지 알코올 중독자로 남고 부랑아는 끝까지 부랑아로, 약한 아이를 괴롭혔던 불량 학생들은 끝까지 불량 학생으로 남는다. 그렇게 결정론적 세계관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 나누기' 운동의 현실 가능성을 강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사회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꼬마 트레버는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이를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제일 먼저 선행을 베풀기로 작정한 사람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우지 못한 유진 시모넷(케빈 스페이시) 선생님과 알코올 중독증에 시달리는 엄마 알린(할리 조엘 오스먼트), 부랑자 제리(제임스 카비젤).
트레버는 유진 시모넷 선생과 엄마의 데이트를 주선하고 외로운 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딱 하나 불량배에게 얻어터진 친구를 위해선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 영화는 사랑 나누기 운동의 '뿌리'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 운동의 가지가 어디로 뻗어가고 있는지의 이동경로까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된 남자. 신문사 기자 출신인 그는 사랑 나누기 운동의 자초지종을 전해듣고 이것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가지에서 가지로, 결국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인물은 트레버 맥킨니. 방송을 탄 트레버는 분명 스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정말 아름다워졌을까. 미미 레더 감독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부터 허물어야 했다.
<식스 센스>로 유명세를 탄 할리 조엘 오스먼트,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케빈 스페이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헬렌 헌트의 연기는 다분히 빛난다. 거기에 보태진 세계적인 록커 존 본 조비와 <드레스 투 킬>의 섹시했던 여배우 앤지 디킨슨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그들의 명연기를 이 영화에 쏟아 붓는 건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영화인들이 할 수 있는 건 '편견 없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편견 없는 영화는 뭔가를 강변하지 않고도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간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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