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씨받이의 21세기 버전!' 뭐, 아직도 유별나게 아들 밝히는 집이 엄연히 존재하고 대리모도 아주 없진 않을테니 그 자체의 윤리적 문제를 따지는 진부함은 일단 접어두자.
내가 <엄마야, 누나야>를 보면서 화가 나는 것은 '21세기 씨받이', 점잖게 표현해 '대리모'인 장미희 여사가 그 옛날 씨받이와 비교하면 직업의식(그 세계에도 프로 의식은 있을테니까)도 인간적 성숙도도 훨씬 떨어지고 상도덕도 없는 망종인데도 그 여자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도록 강요하는 점이다.
내가 옛날 씨받이에 대해 아는 거라곤 강수연을 월드스타로 만든 영화 <씨받이>에서 보고 주워들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씨받이 강수연과 <엄마야, 누나야>의 대리모 장미희는 아들 낳기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만 빼면 모든 면에서 너무 다르다.
씨받이 강수연은 모정이 있었다. 비록 몸만 빌려줘서 낳은 자식이지만 자기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이 있었다. 결국 비극으로 끝났지만 어쨌거나, '철없어 보이던 씨받이도 자기 자식은 아는구나. 참, 핏줄이란 뭘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리모 장미희 여사는 도대체 모정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쌍둥이 중 아들만 보내고 딸은 자기가 키우겠다고 우긴 걸 보면 모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별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안 보이는 걸 보면 냉정한 아줌마구나 싶기도 하고….
이러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딸에겐 일언반구 말도 없이 도망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요즘 문제가 되는 일부 무책임한 부모를 연상케 한다. 매주 "나 아직 출연 중이야"라고 시청자에게 확인시켜주듯 잠깐씩 절규하는 장미희를 보면 연민보다는 짜증이 앞선다.
특히 <씨받이>의 강수연은 '상도덕'이랄까, '직업인'의 자세가 있었다. 아들을 낳은 후 추하게 굴지 않았다. 아들이 보고 싶어 괴로워했지만 씨받이로서의 계약 사항은 다 지켰다. 그런데 이 대리모 여사는 '계약'이나 '약속'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개념인 듯 싶다.
딸을 자기가 키우겠다고 우기면서 나문희 할머니랑 "나중에 딴소리 말라"는 약속도 하고 돈도 더 받는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너 그 집 가도 돼!"라며 딸을 들이민다.
자기가 키우기로 약속했으면 끝까지 자기 자식으로 키우는 거지, 자기 맘대로 남의 가정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그 집 사는 아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히거나 말거나, 자기가 버린 딸 배부르고 등따시면 된다는 심보인 것 같다. 핏줄을 악용하는 그 교활함이 너무 얄밉다.
'오죽하면 대리모 노릇을 했을까, 같은 여자로 참 안됐다'는 맘이 들만도 한데 아직까지 그런 마음이 전혀 안들고 모든 걸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21세기 대리모가 너무 뻔뻔하게 느껴질 뿐이다.
"어쨌든 다 같은 아버지 핏줄이니까 모두 가족이로다"로 마무리될 것 같은데, 글쎄 정말 그럴까? 모든 복잡한 문제를 '피는 물보다 진하다'로 덮어버리는 수법, 지겹다.
이젠 정말 '핏줄따지기'에서 벗어나 넒고 공정하고 상식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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