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아트무비는 어쨌든 SF영화엔 일가견이 있는 영화사였다. <용가리>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심형래 감독은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 식 SF영화를 만들려면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오늘 날 <용가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티라노의 발톱>이나 <영구와 땡칠이> 같은 '유치한' 영화들이 희생타가 됐기 때문이라고.
그런 점에서 <천사몽>도 시행착오의 과정에 있는, 유치하지만 한국 SF 영화사에 뭔가 중요한 업적을 쌓은 영화다. <용가리>와 <천사몽>. 자세히 보면 영 이유 없는 대입도 아니다. <천사몽>의 각본과 감독을 담당한 박희준 감독은 <용가리>의 기획, 캐릭터 사업, 시나리오, 홍보, 제작지휘 등을 도맡았던 '용가리'의 산파였다.
그래서일까. <천사몽>의 마케팅 전략도 <용가리>와 비슷하다. 이 영화는 <용가리>처럼 국내 개봉에서 버는 돈보다 가욋돈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여명을 캐스팅한 이유는 국제무대에서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함이었고 조성모의 음반기획자인 이경섭을 영화음악가로 초빙한 이유는 사운드트랙 판매로도 한몫 건지기 위한 야심이었다. 게다가 조만간 이 영화는 게임으로도 출시되어 멀티미디어 전략상품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영화 밖에서 실로 야심찬 시도를 한 <천사몽>은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데에도 욕심이 많았다. 38억 원의 제작비론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시공간에서, 도저히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끼워 맞추느라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 초반 <천사몽>의 무대는 분명 '현대'다. 어색한 성우의 목소리를 빌린 여명은 촉망받는 특전대 소속 경찰이고 테러진압에 가담했다가 죽을 뻔한다. 이 이상한 총싸움에서 <매트릭스>의 케리 앤 모스를 벤치마킹 한 듯한 이나영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를 어지럽게 뒤섞은 이 영화는 경찰 성진(여명)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 전생여행 예비 실험 중 실종된 박사의 딸 남홍(박근혜)을 구해야 하는 것. 물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선 성진 역시 전생으로의 위험한 여행을 감행해야 한다.
알고 보니 성진은 전생에 가상국가 딜문의 최고전사였다. 그의 이름은 딘. 공주 로제(박근혜)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신분계급이 확고한 이 사회에서 딘과 로제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로제는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 샤닐(윤태영)과 결혼을 앞둔 상태. 이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와 함께 혼합된 이야기는 자극적인 판타지 액션이다. 샤닐은 자신의 영혼을 팔아 불사조 같은 육체를 부여받은 후 딜문의 반역을 꿈꾼다. 로제는 물론 딜문까지 지켜야 하는 딘은 어깨가 무겁다. <천사몽>이 우리말도 서툰 여명에게 너무 막중한 책임을 맡겼듯, 영화 속 '윗분들'도 별 잘 난 것 없는 딘에게 너무 막중한 짐을 지웠다.
줄거리를 들어서 대충 짐작했겠지만 이나영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천사몽>의 이미지를 SF 영화답게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딘의 친구 정우(김지무)와 사랑했던 사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그 남자 손에 죽고 마는 여성 전사 쇼쇼. 대사가 별로 없어 연기력을 평가하긴 어렵지만 이나영이 보여준 전사 쇼쇼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품격이 높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아마추어적이다. 그건 외우기 어려운 길고 복잡한 대사 탓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비단 연기뿐일까. <천사몽>은 미래 배경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신경써야 마땅할 소품 및 의상을 너무 싸구려처럼 꾸몄다. 그래서 일류 SF영화가 될 수 없었던 이 영화는 만화로 만들어졌다면 좀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준다. 일본의 유명 SF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저>처럼.
<파워레인저>는 유치해도 말은 됐지만 <천사몽>은 유치하면서 동시에 말조차도 안 된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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