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무렵 변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받은 야유조의 질문이다. 나는 반농담조로, 까불지 말라는 투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일단 숫자로 봐도 영화감독이 훨씬 적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일생에 한 번만 시험에 합격하면 되지만, 감독들은 매 작품이 피말리는 새로운 시험이다, 아시다시피 그 시험을 매번 계속 통과해야 한다면 정말이지 괴로운 노릇 아니냐’,
설날에 공개된 내 두 번째 작품 ‘눈물’은 개봉 2주만에 서울 극장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방에서는 일주일도 채 안돼 간판을 내리기도 했고 아예 극장에 걸려보지도 못한 도시도 있다. 흥행 참패다.
이 작품을 위해 나 혼자 바친 세월만 해도 2년이 넘는데, 극장에서 2주동안 썰렁한 대접을 받다 사라졌으니 아무래도 가혹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삼복 더위 속에 흘린 스탭들의 소금땀을 생각해 보면 괜한 죄의식까지 생길 지경이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의 의미가 극장에서의 관객 스코어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좀 비겁하지만 자위를 해본다. 비디오 시장에서는 조용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될 것이다.
베를린 영화제, 홍콩 영화제를 시작으로 국제영화제에도 좀 불려다닐 거고 소소하지만 해외 판매도 몇 군데 될지 모른다. 근엄한 공중파 TV에서는 무리일지 몰라도 케이블 TV 정도에서는 ‘19세 이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틀어질 테고.
하지만 감독으로서 정작 내가 기대하는 건 사람들의 마음이다. 몇 안 될지언정 보는 이들의 마음에 내 영화가 남길 파장 말이다. 과연 그럴만한 영화였던가?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작품들을 생각해본다.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잊었어도 그 작품들과 작품들이 준 쾌감은 어쩌면 나라는 인간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는 그 작품을 만든 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마침내 소통까지 하게 되는 것이고. 이 모든 것들이 돈이 되는 건 아니라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난 감히 그런 기대를 갖고 감독이 되었고, 영화를 만들었다. 아직도 그런 기대를 버리지 못한 나는 그 비정한 시험대 앞에 즐거운 마음으로 또다시 선다.
<영화감독>
namu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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