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이상한 뮤지컬 영화<어둠속의 댄서>찬반양론

  • 입력 2001년 2월 15일 18시 49분


<<24일 개봉될 '어둠 속의 댄서’는 극단적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영화다. 덴마크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연출하고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 팝가수 비욕이 주연한 이 영화에,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는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헌정했다. 반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0년 최악의 영화’로 꼽고 "이게 영화의 미래라면 차라리 과거를 돌려달라"고 조롱했다. 국내에선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영화를 미리 보고 상반된 평가를 한 영화평론가 두 명의 글을 싣는다.>>


      ◇심영섭(영화평론가)=짱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늘 세계 영화계에서 하나의 도발이었다. 그가 거장인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브레이킹 더 웨이브’나 ‘백치들’의 인간군상들, 삶의 진흙탕을 헤매면서도 주류사회에 적응하기를 끝내 거부하는 그들의 구슬픈 몸짓을 잊기 힘들 것 같다.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도 마찬가지다.

칸 영화제에서 ‘어둠 속의 댄서’가 상영됐을 때 미국 비평가들은 ‘멜로의 당의정에 담긴 진부한 신파’라는 비판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처럼 싫어할 수는 있어도 평가절하할 수 없는, 그런 영화다.

핵심은 ‘어둠속의 댄서’가 신파든 아니든, 뛰어나게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가장 잔인한 운명의 순간에 만나는 음악의 의미를 이처럼 절절하게 설파한 영화가 있었던가?

이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뮤지컬이라는 빛의 장르를 통해 삶의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대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 새로움의 날개로 ‘떠보려’ 한다고 해서, 그 영화 자체가 쓰레기라는 논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의 댄서’에서 어둠은 다층적인 의미이다. 그것은 셀마가 실명으로 직면하는 암흑의 세계인 동시에, 미국이라는 번영의 제국에 묻힌 노동 현실의 뒤안길이자 행복을 파는 장르인 뮤지컬이 주는 마약같은 위안 뒤에 오는 어둠이기도 하다.

라스 폰 트리에는 미국이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형제도와 로맨스에 야멸찬 시선을 보낸다. 특히 이 영화의 뮤지컬 장면들은 관객에게 강력한 정서적 고취를 주는 동시에 기존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그의 질타와 사회적인 비판이 절정을 이룬, 연출의 절창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 영화가 ‘사운드 오브 뮤직’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35번 보았다) ‘어둠 속의 댄서’는 가장 깊숙한 절망의 심연에서, 가수 비욕의 우둘투둘하지만 통곡같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소음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


      ◇김영진(영화평론가)=꽝이다!

'어둠 속의 댄서’를 만든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영화 역사상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테크니션이라는 건 자명하다. ‘어둠 속의 댄서’의 모든 장면은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비극적 여주인공 셀마 역을 맡은 가수 비욕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못해 눈부시다. 마치 실제 삶의 복판에 있는 듯한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잡아낸 카메라도 현대적 기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디지털 카메라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다큐멘터리적인 현장감을 끌어내며 인물과 상황에서 다양한 정서적 질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불쾌해진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지만 감독이 억지로 꾸며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가장 인위적인 감동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자연스러운 체 하는 위선을 감추고 있다.

각본은 차마 요즘 쓰여진 것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구태의연하다. 감독은 예고된 불행의 함정에 갇히는 여주인공 셀마의 운명을 억지로 꾸미고 심술궂게 장난을 친다.

이야기가 비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여주인공 셀마가 상상으로 꿈꾸는 뮤지컬 장면이 끼어드는 것이다.

상황이 꼬일수록 뮤지컬 장면이 주는 환상에의 매혹도 커진다. 아마추어 공연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습하는 초반 장면 이후로 공장 노동장면의 막간이나 심지어 사형대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장면은 가장 처절한 현실이 가장 아름다운 매혹적 환상의 공간으로 바뀌는 영화의 마술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어둠 속의 댄서’는 허구의 주인공을 억지로 순교적인 인물로 만들고 그걸 자연스러운 듯 치장한 뒤 모두 함께 울자고 선동하지만 뭔가 우롱당한 느낌만이 남는다. 스크린에서 자기연민을 구하고 싶은 관객의 나르시시즘에 음흉하게 호소하며 가장 솔직한 감정의 매개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잠재력을 가장 인위적인 감동을 꾸며내는 도구로 끌어내린다.

‘어둠 속의 댄서’는 영화 기술에 통달한 위대한 사기꾼이 가르치는,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감정교육이다. 관객의 감정을 도둑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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