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정지한 스냅사진같은 영화<도쿄 맑음>

아무 사건도 이야기도 없다. 물처럼 흐르는 화면 안엔 감성 풍부한 한 여자가 있고 그녀를 추억하는 한 남자의 스냅사진이 있다. 그게 전부다. 사진 속에서 넌지시 웃고 있는 한 여자, 해바라기 가득한 벌판에서 오롯이 서 있는 그 여자의 우아한 자태. 단지 삶의 한 단편이었을 뿐인 '사진 속 장면'은 영화의 흐름과 함께 사연 많은 이야기가 된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다 사건이라면 "아무 사건 없는 영화"라는 표현은 사실 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쿄 맑음>엔 아내의 실종, 죽음 등 인생사의 온갖 슬픔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럽게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질구레한 현실의 사건을 잊혀진 기억과 사진 속에만 소담스레 묻어 두었다. 사진 속에 담겨진 사건은 더 이상 사건이 되지 못하고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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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촉망받는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와 요코 부부의 실화를 영화화 한 <도쿄 맑음>은 인화된 사진처럼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는 영화다. 사진작가의 일상을 포착했기 때문일까.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의 배우로 익숙한 다케나카 나오토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한 편의 포토 에세이를 떠오르게 한다.

다케나카 나오코 감독이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도 아리키 노부요시의 포토 에세이에 대한 매혹 때문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아라키의 포토 에세이를 보게 된 감독은 책장을 넘기다 기어이 눈시울을 적셨고 곧 이 부부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영화가 추억하는 이들 부부의 일상은 결코 '눈물 나게' 아름답진 않다. 아내(나카야마 미호)가 살아 있을 때 시마즈(다케나카 나오토)는 결코 훌륭한 남편은 못 되었던 것 같다. 감성이 풍부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만 잔뜩 안겨 주었다.

시마즈가 추억하는 아내와의 일상은 그렇다. 이웃집 아이를 제 아이처럼 챙기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내에게 쓸데 없이 언성을 높였던 기억. 아내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혼자 슬픔을 다독이다 가출하고 가끔 눈물도 터뜨린다.

시마즈는 여행을 통해 아내와의 엉클어진 관계를 회복하지만 그건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 그는 왜 그때 아내가 눈물을 터뜨렸는지, 왜 집을 나가야 했는지 끝내 알지 못한다. 아내가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녀가 느꼈던 슬픔의 진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실화를 영화화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웠을 요코 역의 나카야마 미호는 상처 입은 아내 역을 그럴듯하게 연기했으며 코믹 연기의 대가로 알려진 다케나카 나오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색다른 연기 변신을 꾀했다. 특히 이 영화가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 <4월 이야기>의 마츠 다카코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는데, 마츠 다카코의 매력은 나카야마 미호의 매력에 가려 제 빛을 발하지 못한 인상이다.

시마즈의 후배로 등장하는 마츠 다카코 이외에도 이 영화엔 특별한 카메오들이 아주 많다. <철남> <쌍생아> 등을 연출했던 츠카모토 신야 감독,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 등. 그들은 이 영화에서 우편배달부, 지나가는 남자 등으로 출연해 다케나카 나오토에 대한 우애를 과시했다.

너무 밋밋한 이야기여서 감정을 녹여내기 어려운 영화지만, 이 영화엔 또 하나 잊지 못할 미덕도 있다. 스냅사진처럼 아름다운 영상에 힘을 실어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평범한 포토 에세이에 그치고 말았을 이 영화에 천상의 소리를 입혔다.

(감독 다케나카 나오토/주연 다케나카 나오토, 나카야마 미호, 마츠 다카코/등급 모두 이용가/러닝타임 120분/개봉 2월24일/홈페이지 주소 http://www.movie-tokyo.co.kr)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