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유준상, 6년만에 빛 본 미워할 수 없는 '악역'

  • 입력 2001년 2월 26일 18시 47분


뜨거운 지중해에서 타오르던 알랭 들롱의 눈동자.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자신의 비루함에 대한 열등감과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교차하던 그 야성적 눈빛일까. 아니면 1999년 이를 리메이크한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이 보여줬던 은밀한 눈빛일까.

KBS2 주말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오후 7시50분)에서 주인공 강민기역의 유준상(32)이 보여주는 눈빛 연기는 분명 그 언저리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

95년 SBS 공채 5기 탤런트로 데뷔한 지 6년만에 주말 드라마의 주역을 맡은 그는 그동안의 반듯한 이미지를 깨고 악역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태양은 가득히>는 그가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복수를 위해 자신에게 사랑까지 양보했던 죽마고우 호태(박상민)를 배신하고 그의 여인(김민)을 가로채면서 시청률이 급등하고 있다.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MBC의 ‘엄마야, 누나야’에 10%나 뒤지던 시청률이 지난 주말34.4%(TNS미디어코리아 조사)까지 올라가면서 반대로 10% 가까이 앞질렀다.

이 드라마의 홈페이지에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쏟아지고 있다. 민기에 대해 비난 일변도의 의견만 몰리는 것은 아니고 ‘불쌍하다’는 반응도 많다.

“저도 엄청 욕을 먹을 것 같아 외출도 자제했는데 막상 사람들을 만나면 ‘힘내라’거나 ‘민기의 팬’이라면서 격려와 연민의 눈빛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더 많더라구요.”

실제 민기는 무작정 악인은 아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할머니의 병간호로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해야했던 모진 운명과 아버지를 자살로 몰아넣고 어머니를 빼앗아간 나사장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것.

하지만 그런 이유로 평생 자신의 곁을 지켜준 친구와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까지 배신하는 극단적 행동이 합리화될 수 있을까.

“민기는 자신이 짊어진 운명의 짐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산다는 점에서 비극적 존재죠.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통을 받으면서 운명적 욕망 때문에 몸부림치는 인간이죠. 그 때문인지 그런 민기가 칼에 맞는 장면에선 대본에도 없는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는 180㎝의 훤칠한 키에 드럼 기타 섹스폰 피아노 등 못다루는 악기가 없다. 또 지난해에는 전시회를 열만큼 미술적 재능도 뛰어난 팔방미인. 그는 시간만 나면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여행광이기도 하다.

“악기를 연주하면 신이 나고 그림을 그리면 한없이 순수해져요. 그리고 여행을 하다보면 충만해지고. 그런 힘이 합쳐져서 연기가 나올 때는 제가 사라지죠.”

4월 무대에 올릴 뮤지컬 <더 플레이어>의 연습 때문에 밤 11시까지 연습실에 남아있던 그에게선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반항아 알랭 들롱보다는 <리플리>에서 갖가지 재능을 감추던 맷 데이먼의 모습이 떠올랐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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