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네마자데가 타고난 순진함으로 어른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면 <천국의 아이들>의 두 꼬마는 슬픔까지 보탠 순진함으로 뼈 속까지 파고드는 감동을 전해준다.
간단히 요약된 줄거리만으로도 이 영화는 예쁘다. 시장에서 동생(바하레 시디키)의 분홍 구두를 잃어버린 오빠 알리(미르 파로크 하스미안). 꼬마는 자신의 집안 형편이 새 신을 살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엄마는 아프고 집세는 5달째 밀려있기 때문. 문제의 발단은 바로 이 단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아이들의 해결 방식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빠는 동생을 회유한다. "제발 엄마, 아빠한테 이르지 말아줘. 이른다해도 새 신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잖아." "그럼 난 내일 뭘 신고 학교에 가지?" "내 운동화를 같이 신자! 난 오후반이니까 네가 먼저 내 신을 신으면 돼."
이렇게 해서 시작된 '운동화 함께 신기'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친다. 열심히 달려도 오빠 알리는 연일 학교에 지각하고 방과 후 함께 공차기를 하자는 친구들의 제안에도 선뜻 응하지 못한다. 귀여운 동생 자라 역시 모든 게 불만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오빠의 운동화 대신 예쁜 구두를 신고 싶어한다.
두 꼬마는 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갈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모습은 순진하기 그지없다. 운동화를 빨다 말고 비눗방울 놀이에 정신을 쏟고, 잃어버린 신발을 발견한 후에도 선뜻 "내 구두야"라는 말을 못한다. 그 신을 신은 아이의 아빠가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발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묶인 또 다른 이야기는 '이란의 빈부격차'다. 대부분의 이란영화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란의 빈부격차 현실이 눈 앞에서 생생히 펼쳐진다. 알리와 아빠가 일일 정원사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도시. 그 도시 주변에 지어진 고래등같은 집들은 이란 서민 주택과 완전히 다르다.
그 집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아무 고통도, 슬픔도 느끼지 않을까. 감독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알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꿈과 용기를 잃지 않지만 정작 고래등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아이는 심심하고 무료한 일상 때문에 견딜 수 없는 표정이다.
단호하진 않지만 이란의 현실을 의미심장하게 꼬집는 이 영화는 아주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건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며 가장 상업적이며 가장 코믹하고 슬픈 에피소드다. 어린이 마라톤 대회의 3등 부상이 운동화라는 걸 안 알리가 동생에게 새 신을 선물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이야기. 눈물이 반짝반짝 매달릴 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이 에피소드는 욕망에 관한 재미있는 우화로도 읽힌다.
신발은 흔히 신화나 전설 속에서 '욕망'의 상징으로 치환되는데, 이런 분석을 적용해보면 영화가 더욱 재미있어진다. 욕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어떻게 삶의 액센트가 될 욕망을 실현하고 쟁취해나가는지. 보는 내내 적당한 미소와 눈물을 안겨줄 이 영화는, 이란 영화가 더 이상 순진함에 머물지 않고 휴머니즘의 감동까지 습득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천국의 아이들>의 두 주인공은 다른 이란 영화와 마찬가지로 실제 배우가 아닌 테헤란 초등학교에서 찾아낸 보물들. 그들의 연기엔 '거짓말'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진짜 삶'이 담겨져 있다.
(원제 Children of Heaven/감독 마지드 마지디/주연 미르 파로크 하스미안, 바하레 시디키/등급 모두 이용가/러닝타임 88분/개봉일 3월17일/홈페이지주소 http://www.childrenheaven.co.kr)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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