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국민 정신건강 해치는 '건강보감'

  • 입력 2001년 3월 12일 15시 07분


어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건강보감'을 보고 정말 "뜨악!" 했다.

원래 '건강보감' 코너는 건강의 탈을 살짝 뒤집어 쓴 토크 코너라 생각하고 있었다. 워낙 말 잘하는 MBC '대표 개그맨님'들이 출연해, 온 몸을 아끼지 않고 웃겨주시니 보는 사람이야 고마울 뿐이었지만, 점점 막 나가는 정도가 심해지더니 어젠 이경규가 바지를 벗네 마네 했으니…. 참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뿐이었다.

일요일 저녁의 오락 프로그램을 못 씹어서 안달인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래도 난 내심 "그래도 웃기잖아? 그럼 일요일 저녁에 모두 다큐멘터리만 보리?"하며 일요일 밤의 오락 프로그램을 진정 응원했는데…. 이건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뒤통수 한 방 맞고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정 뚝 떨어진 꼴이다.

'건강보감'이 처음부터 그렇게 '기막힌 코너'는 아니었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하는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했지만 출연자들의 워낙 뛰어난 말발과 순발력에 감탄도 많이 했다. 박경림의 탁월한 진행(누가 이 여인을 네모라고 탓하랴∼방송가에서 날고 기는 아저씨들을 다루는 솜씨가 장난 아니다), 이경규 아저씨의 주책스런 조크와 우기기도 귀엽게 봐 줄만 했고, 신동엽의 재치, 김용만의 재롱도 그저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건강 정보도 가뭄에 콩 나듯 건질만한 것들이 있었고.

그런데 그냥 저냥 재미있던 네 사람의 개그가 점점 막나가더니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웃기는 건지 서로 싸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치고 박고 난리를 부리고. 저녁 식탁에 앉은 시청자야 밥이 넘어가건 말건 온몸을 던지고 굴리고 (이것도 프로근성이라고 박수를 쳐줘야 하는건지…).

엄마 아빠랑 같이 TV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듣거나 말거나 캬바레가 어쩌구…, 코피가 어쩌구…, 마침내 바지까지 벗네 마네 하니, 도대체 어디까지를 개그맨의 '창작의 자유'로 봐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난 오락 프로그램을 말하면서 '저질'이니 '삼류'니 하는 것, 정말 싫어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잘났나? 조금은 망가지고 조금은 막나가야 웃기지, 한번 시원하게 웃으면 그만인 것을 '고급 웃음', '일류 웃음'만 찾는 건 무슨 멋이냐는 게 내 지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그맨이 방송에서 무슨 짓을 해도 웃기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토크쇼 같은데 보면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사적인 자리에서 더 재미있다는 개그맨이 있다. 예전엔 "저 사람 바보 아냐? 개그맨이 코미디에서 웃겨야지, 왜 지들끼리 있을 때 웃기냐?"며 의아해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그립다.

방송에서 할 말, 못할 말, 할 짓 안할 짓 가릴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자기들끼리 술집 가서 할 얘기나, 방송에서 할 얘기나 구분이 없다.

나 하나 망가져서 온 국민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충정은 이해하지만 망가지는 것도 어느 정도지, 시청자는 개그맨이 바지 벗고 설쳐야만 웃는 변태가 아니다. 전국민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데 가정을 가진 아저씨가 바지를 벗고, 그걸 애써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국민들이 건강해진단 말인가?

밥 잘먹다가 켁! 체할 일이지.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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